가해자 조사도 전에 '대질'부터?…법조계 "피해자 거부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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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조사도 전에 '대질'부터?…법조계 "피해자 거부권 있다"

2025. 12. 12 10:16 작성
최회봉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caleb.c@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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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이례적 '대질조사' 요구에 가정폭력 피해자 혼란…법조계 "명백한 거부권, 응할 의무 없다"

경찰이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가해자 조사 전 대질조사를 요구해 논란이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가해자 목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내려앉는데, 얼굴을 마주하고 진술하라니요.


가정폭력 피해자 A씨는 수사관의 전화를 받고 귀를 의심했다. 아직 정식 조사조차 받지 않은 가해자와의 '대질조사'에 나오라는, 상식 밖의 요구였다.


경찰은 "가해자가 전화로 새로운 주장을 한다"는 이유를 댔지만, A씨에게는 두려움과 함께 '이런 수사가 과연 정상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먼저 들었다.


수사 순서 뒤집은 경찰, 왜 피해자에게 ‘대질’부터 요구했나?


통상적인 형사사건 수사는 고소인(피해자) 조사를 먼저 한 뒤, 그 진술을 토대로 피고소인(가해자)을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양측의 말이 첨예하게 엇갈려 진실을 가리기 어려울 때 최후의 수단으로 동원되는 것이 바로 대질조사다. 특히 가정폭력 사건에서는 2차 가해 우려가 커 수사기관이 극도로 신중하게 결정하는 절차이기도 하다.


김경태 변호사(법률사무소 김경태)는 “현재 상황은 매우 이례적이며 절차상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사의 기본 원칙상 피고소인 조사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특히 가정폭력 사건의 특성상 가해자와의 대면이 추가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대질조사 거부는 매우 정당한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이진채 변호사(법률사무소 가호) 역시 “피해자로서 대질조사에 무조건 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피해자의 동의 없는 대질조사는 강제로 진행할 수 없다는 뜻이다.


현행 ‘인권보호수사규칙’ 제57조는 대질조사를 ‘불가피한 사정이 있고 사건당사자가 동의한 경우’에 한해 실시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이는 수사 편의보다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두기 위해 마련된 핵심적인 인권 보호 장치다.


경찰의 ‘무리수’, 실은 ‘증거 부족’의 시그널?


반면, 수사관이 이례적인 절차를 감수하면서까지 대질조사를 꺼내 든 속내를 다른 각도에서 분석하는 시각도 있다.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는 혐의 입증이 어렵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다.


부장검사 출신인 이철호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는 “대질조사를 하겠다는 것은 각자의 주장에 비추어 혐의나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라며 “직접 당사자의 말을 들어보고 누구의 말을 믿을지를 판단해보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수사관이 양측을 대면시켜 반응과 태도를 직접 관찰함으로써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의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결론적으로 A씨는 수사관에게 대질조사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인권보호수사규칙’을 근거로 거부 의사를 명확히 밝히고, 가해자 조사를 먼저 진행해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할 것을 권고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사 과정에서 위축되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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