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죽었다"는 전화, 8년 사귄 연인의 아내 목소리였다
"남편이 죽었다"는 전화, 8년 사귄 연인의 아내 목소리였다
8년간 '사별한 사업가'로 속여 거액 빌린 남성…전문가들 "사기죄 고소로 생사부터 확인해야"

A씨가 8년간 사랑한 남자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전화가 왔다. 그런데 그 비보를 전한 사람은 그 남자의 아내였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8년간 사랑한 연인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비보, 그런데 전화를 건 사람은 그의 '아내'였다.
이혼의 아픔을 겪던 B씨에게 '아내와 사별한 사업가'라며 다가온 한 남성. 8년간 충남과 부산을 오가며 애틋한 장거리 연애를 이어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남성은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사업 자금이 급하다", "땅이 팔리면 바로 갚겠다"는 말을 믿고 B씨는 자신의 통장과 카드까지 내줬다.
지난 3월,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남성은 나타나지 않았고 며칠 뒤 자신을 '아내와 아들'이라 밝힌 이로부터 "남편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어야 했다.
"내 돈 뜯어간 그 남자, 정말 죽었을까?"
가장 먼저 풀어야 할 매듭은 남성의 실제 사망 여부다. 갑자기 나타난 아내의 존재와 믿기 힘든 사망 통보. 모든 것이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진실을 확인할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형사 고소'다.
백창협 변호사(법무법인 오른)는 "사기 혐의로 고소를 진행하면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신원을 조회하는 과정에서 실제 사망 여부를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인이 사망신고 여부나 사망진단서를 확인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차용증 한 장 없는데…8년의 이체 기록이 '스모킹 건'"
B씨 측의 가장 큰 고민은 차용증처럼 돈을 빌려줬다는 명확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포기하기엔 이르다고 말한다.
강민기 변호사(법률사무소 새율)는 "처음부터 갚을 의사나 능력 없이 돈을 요구했다면 명백한 사기"라며 "'아내와 사별했다'고 속인 사실 자체가 신뢰를 얻기 위한 핵심적인 기망행위(상대방을 속이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8년간의 계좌이체 내역, "땅 팔리면 갚겠다"고 언급한 문자나 통화 녹음 등은 그의 사기 혐의를 뒷받침할 결정적 '스모킹 건'이 될 수 있다.
"만약 진짜 사망했다면? 빚도 상속된다"
만약 수사 결과 남성이 실제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다면 빌려준 돈은 공중으로 사라지는 걸까. 이 경우에도 길은 있다. 채무 역시 재산의 일부로 상속되기 때문이다.
김전수 변호사(법무법인 유한 한별)는 "채무 관계는 상속인에게 그대로 승계된다"며 "남성의 법적 상속인인 아내와 아들에게 변제를 요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다만, 상속인들이 상속을 포기하거나 물려받은 재산 한도 내에서만 빚을 갚는 '한정승인'을 할 경우 돈을 돌려받기 어려워질 수 있어 신속한 법적 대응이 관건이다.
결국 B씨가 8년의 세월과 함께 잃어버린 돈과 신뢰를 되찾기 위한 첫걸음은 경찰서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형사 고소는 남성의 생사를 확인하고, 그의 거짓말을 법의 심판대에 올릴 사실상 유일한 열쇠다.
장밋빛 약속으로 쌓아 올린 8년의 믿음이 송두리째 무너진 지금, B씨에게 남은 것은 차가운 배신감과 기나긴 법적 다툼의 시작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