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백 입증의 덫, 거짓말탐지기…변호인단 만장일치 '거부' 권고
결백 입증의 덫, 거짓말탐지기…변호인단 만장일치 '거부' 권고
공황장애 앓는 피의자, 진실 말해도 '거짓' 나올까 전전긍긍…전문가들 '위험한 도박' 경고

절도 혐의를 받는 남성이 결백 증명을 위해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자청했으나, 수사 스트레스로 공황장애를 얻었다. / AI 생성 이미지
결백을 증명하겠다며 스스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요청했던 한 남성이 아이러니한 위기에 처했다. 수사 스트레스로 얻은 공황장애가 오히려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만들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인 것이다.
그의 사연에 법률 전문가들은 이례적으로 만장일치 의견을 내놨다. 진실을 입증하려다 돌이킬 수 없는 낙인이 찍힐 수 있으니, 지금은 검사를 받을 때가 아니라는 강력한 경고다.
"결백 증명하려다…" 공황장애라는 뜻밖의 복병
절도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된 A씨. 그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지만, 수사관은 정황 증거만으로 송치를 기정사실화했다. 억울함을 풀 길이 없다고 느낀 A씨는 "거짓말탐지기를 받겠다"며 자청했다. 진실만이 유일한 무기라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운명은 얄궂었다. 수사 과정에서 받은 극심한 스트레스가 결국 '공황장애'라는 병을 불렀다. 진실을 말할 때조차 심장이 뛰고 호흡이 가빠지는 증상.
A씨는 이제 자신의 몸이 기계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려워졌다. 그는 진실을 말해도 공황 증상 때문에 결과가 왜곡될 수 있다는 걱정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결백 증명의 동아줄이라 믿었던 선택이, 이제는 족쇄가 될지 모를 기로에 섰다.
"위험이 압도적으로 크다"…변호인 7인의 단호한 경고
A씨의 딜레마에 법률 전문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한목소리로 '검사 거부'를 권고했다. 법무법인 한설 조민성, 법률사무소 서아람 서아람, 법무법인 도모 김상훈 변호사 등 상담에 참여한 변호사 7명 전원의 의견이 일치했다.
서아람 변호사는 "변호사로서 냉정히 판단하건대 현재 상태에서의 검사는 거부하는 것을 강력히 권유드립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기계는 피검사자의 심리적 동요가 거짓말 때문인지 질환에 의한 불안인지 완벽히 구분하지 못합니다"라며 공황장애 상태에서는 결과가 왜곡될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클리어 법률사무소 김동훈 변호사 역시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현재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상태에서의 거짓말탐지기 검사는 실익보다 위험이 압도적으로 크기에 진행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라고 못 박았다.
진실 반응이 나와도 참고자료에 불과하지만, 만약 거짓 반응이라도 나온다면 혐의를 굳히는 '최악의 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원의 엄격한 잣대…"탐지기 결과는 정황증거일 뿐"
변호사들의 '위험' 경고는 법원의 판례와도 일맥상통한다. 거짓말탐지기 결과는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받기 위한 조건이 극도로 까다롭다. 대법원은 검사 장치의 정확성, 검사 기술의 합리성, 검사자의 능력 등 여러 전제요건을 제시한다.(대법원 2005도130 판결)
설령 이 모든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그 증명력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법적 분석 자료에 따르면 대법원은 "위와 같은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 증거능력이 있는 경우에도 그 검사결과는 검사를 받는 사람의 진술의 신빙성을 가늠하는 정황증거로서의 기능을 하는 데 그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대법원 1984. 2. 14. 선고 83도3146 판결)
즉, 거짓말탐지기 결과 하나만으로 유죄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확고한 입장이다.
해법은 '현명한 거부'와 '전략 수정'
그렇다면 A씨가 택할 최선의 방어 전략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의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한 정당한 거부권 행사'를 첫손에 꼽았다. 단순히 검사를 회피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서아람 변호사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단서와 소견서를 첨부하여 의견서를 제출해야 합니다"라며, '검사를 원했으나 건강 문제로 결과의 객관성을 보장할 수 없어 부득이 철회한다'는 점을 명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는 검찰에서도 정당한 권리 행사로 판단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나아가 전문가들은 A씨가 이제 시선을 돌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동훈 변호사는 A씨가 놓치고 있는 핵심을 짚으며 "A씨가 놓치고 있는 핵심 쟁점은 거짓말탐지기 수검 여부가 아니라, 수사관이 확신하고 있는 정황증거의 허점을 법리적으로 탄핵하는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위험한 도박에 기댈 것이 아니라, 수사관의 논리를 법리적으로 깨뜨리는 정공법이 A씨에게 가장 필요한 방패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진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