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무죄→다시 유죄? '파기환송' 미로에 갇힌 피고인, 탈출구는
유죄→무죄→다시 유죄? '파기환송' 미로에 갇힌 피고인, 탈출구는
대법원서 뒤집힌 2심 무죄 판결…변호사들 "항소이유서 아닌 '의견서'로 대법원 논리 깨야"

A씨의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2심의 무죄 판결을 깨고 사건을 다시 돌려보냈다. 이 상황에서 A씨가 할 수 있는 일은?/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무죄인 줄 알았는데… 대법원이 내 인생을 원점으로 돌렸다
1심 유죄, 2심 무죄. A씨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마침내 '무죄'라는 빛을 봤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대법원이 2심의 무죄 판결을 깨고 사건을 다시 돌려보낸 것이다. '파기환송(대법원이 하급심 판결을 깨고 다시 재판하라고 돌려보내는 것)'. 낯선 단어와 함께 그의 인생은 한순간에 원점으로 돌아왔다. 롤러코스터 같은 재판의 끝에서 그는 다시 무죄를 외칠 수 있을까.
"항소이유서 또 내야 하나요?" 변호사들의 답은 'NO'
원점으로 돌아온 재판에 막막해진 A씨가 가장 먼저 떠올린 질문은 '항소했을 때처럼 항소이유서를 또 내야 하나'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다수의 변호사들은 파기환송심은 항소심의 연장이 아니므로, 새로운 항소이유서를 제출할 필요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법무법인 창세의 김정묵 변호사는 "이미 항소심에서 제출했던 항소이유서를 바탕으로 추가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이 A씨에게 제시한 해법은 '피고인 의견서' 또는 '변론요지서'다. 법률사무소 조이의 윤관열 변호사는 "법원의 요청이 없더라도 피고인 의견서 형식으로 사실오인(사실관계를 잘못 판단함) 및 법리오해(법률 해석을 잘못 적용함) 부분을 정리해 제출하는 것이 적극적인 방어 전략"이라고 조언했다. 재판부가 미리 피고인의 입장을 파악하게 해 효과적인 변론을 준비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대법원이 채운 '족쇄', 이것 없인 절대 못 푼다
하지만 A씨 앞에는 거대한 벽이 놓여있다. 바로 대법원 판단이라는 '보이지 않는 족쇄'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대법원이 "2심의 무죄 판결은 이러이러한 점에서 잘못됐다"고 지적한 판단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를 법률 용어로 '기속력'이라 부른다. 이 족쇄를 풀지 못하면, 유죄를 피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변호사들은 단순히 2심에서 했던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강조한다. JY법률사무소 이재용 변호사는 "기존 주장뿐 아니라, 대법원의 판단을 어떻게 반박할지를 추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대법원이 2심 판결을 파기한 핵심 논리를 정면으로 깨뜨릴 새로운 논거나 해석을 제시해야만, 닫혔던 무죄의 문을 다시 열 수 있다는 의미다.
"무죄 아니면 감형이라도"…플랜B가 필요한 이유
대법원의 판단을 뒤집기란 현실적으로 하늘의 별 따기다. 올인 법률사무소 허동진 변호사는 "다시 무죄 취지 판결을 받는 게 쉬운 싸움은 아닐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접근을 당부했다. 무죄 주장만 고집하다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다.
그래서 일부 변호사들은 A씨에게 '플랜B'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유죄가 유지될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반향 정찬 변호사는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를 체계적으로 주장하는 동시에, 반성 및 정상참작 요소를 강조하여 양형(형벌의 정도를 정하는 것) 감경을 시도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응 방안"이라고 말했다. 무죄 주장에만 '올인'하기보다,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형량을 낮추기 위한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벼랑 끝에 선 피고인에게 마지막 '안전벨트'는 있다. 바로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이다. 검사가 아닌 피고인만 상고(대법원에 불복 신청)한 사건이라면,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전 1심 판결보다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다.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최소한의 방어막인 셈이다. 결국 파기환송심은 대법원의 논리라는 족쇄를 차고 싸워야 하는 외로운 싸움이지만, 날카로운 '의견서'와 치밀한 전략이 있다면 A씨에게도 희망은 남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