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한다더니 사직서 써달라는 회사…그대로 따랐다가 실업급여 부정수급자로 몰렸다
해고한다더니 사직서 써달라는 회사…그대로 따랐다가 실업급여 부정수급자로 몰렸다
사직서 썼지만 '실질적 해고' 인정
실업급여 부정수급 혐의 벗어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사직서를 직접 썼음에도 '자진 퇴사'가 아닌 '실질적 해고'로 인정받아 실업급여 부정 수급 혐의를 벗은 판결이 나왔다. 근로자의 진의가 담기지 않은 사직서는 형식에 불과하다는 법원의 일관된 원칙이 재확인된 사례다.
문자 한 통으로 시작된 해고, 사흘 만에 날아온 '의문의 사직 권유'
사건의 발단은 2024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식회사 C에서 일하던 피고인 A씨는 7월 13일, 회사 대표로부터 문자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배송 후 늦장 귀사를 사유로 해고 예고기간 이후 2024. 9. 27.자로 피고인을 해고한다"는 일방적인 해고 통보였다.
회사는 A씨에게 7월 14일부터 28일까지 연차 휴가를 부여했고, A씨는 그날부터 출근하지 않았다.
이틀 뒤인 15일에는 "배송물량 감소에 따른 업무상 필요치 않기에 더 이상 정년연장 불허"라는 사유가 추가된 해고예고통보서가 내용증명으로 날아왔다.
그런데 며칠 뒤, 회사의 B 부장이 A씨에게 연락을 취해왔다. B 부장은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한다는 내용의 사직서를 회사에 방문하여 작성하고, 회장님께 인사드리고 마무리 해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A씨가 망설이자 B 부장은 전화통화로 "위와 같은 사직서를 작성해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끈질기게 작성을 권유했다.
결국 A씨는 7월 22일 회사를 찾아가 '일신상의 이유로 2024. 7. 31. 사직한다'는 사직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내 발로 쓴 사직서가 부른 화근, 순식간에 '부정수급자' 낙인
하지만 이 사직서는 A씨의 발목을 잡았다. A씨는 퇴사 후 8월 19일 서울북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실업급여를 신청해 2024년 9월 2일, 8일 치에 해당하는 52만 8000원을 지급받았다.
이를 두고 검찰은 A씨가 자진 퇴사했음에도 B 부장과 공모해 고용보험 상실사유를 '경영상 권고사직'으로 허위 기재해 실업급여를 부정 수급했다며 고용보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법정에서 A씨 측은 "회사를 자진퇴사 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해고를 당한 것이므로, 실업급여를 수급할 자격이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경찰 조사에서 덜미 잡힌 B 부장의 진짜 속내
재판의 핵심 쟁점은 제출된 사직서의 법적 효력이었다. 재판부는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B 부장의 진술에 주목했다.
B 부장은 경찰 조사 당시 "사무실 분위기가 좋지 않았는데, 피고인이 연차 휴가 기간 끝나면 다시 나와서 일을 해야 하니 어차피 그만두게 되었으니까 조금이라도 빨리 퇴사를 하게 하려고 했다"고 털어놨다.
대표의 일방적 해고 통보 이후, 회사 측이 A씨를 조기 퇴사시키기 위해 사직서 작성을 종용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는 사실상 사직서 제출의 주도권이 근로자가 아닌 사용자에게 있었다는 법정 안팎의 명백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외형보다 '실질적 전후 맥락' 꿰뚫어 본 법원
서울북부지방법원 강경묵 판사는 피고인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위 회사 사이의 근로계약관계 종료 여부는 사용자 측의 일방적 의사에 의하여 결정되었고, 다만 그 종료일을 당초 통보된 2024년 9월 27일이 아닌 2024년 7월 31일로 정하는 과정에서 사용자 측의 권유에 따라 위 사직서가 작성·제출된 것"이라고 사실관계를 정리했다.
이어 "피고인은 실질적으로 해고를 당한 것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고 판시했다.
결국 법원은 "피고인이 위 회사를 자진퇴사 하였기에 실업급여를 수급할 자격이 없었고 그럼에도 실업급여를 부정 수급하였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