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박스 꺼졌는데…'CCTV 0대' 아파트, 긁힌 내 차 누가 보상하나
블랙박스 꺼졌는데…'CCTV 0대' 아파트, 긁힌 내 차 누가 보상하나
지난 10월 1일 아침, 주차된 차가 긁힌 걸 발견했다. 블랙박스는 꺼져 있었고, 1651세대 아파트 주차장엔 CCTV가 단 한 대도 없었다. 범인은 오리무중, 관리사무소는 '법적 의무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과연 내 차 수리비는 누가 책임져야 할까.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놓은 A씨의 차량을 누군가가 긁고 갔지만, 주차장에는 CCTV가 한대도 없었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1600세대 아파트 주차장 'CCTV 0대'…'물피도주' 피해, 관리사무소에 배상 청구 가능할까?
경기도 분당의 1651세대 대단지 아파트. 주민 A씨의 평범한 10월 1일 아침은 지하 주차장에서 산산조각 났다. 주차해 둔 자신의 차량 뒷부분이 누군가 긁고 간 듯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범인을 잡을 유일한 희망이었던 차량 블랙박스는 야속하게도 주차 중 녹화 기능이 꺼져 있었다.
A씨는 곧장 관리사무소로 달려가 CCTV 영상 확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황당했다. "저희 아파트 주차장에는 CCTV가 한 대도 없습니다."
1600세대가 넘는 입주민의 차량 수천 대가 오가는 공간이 아무런 감시 장치 없이 방치돼 있었다는 사실에 A씨는 할 말을 잃었다. 경찰에 물피도주(물적 피해를 낸 뺑소니) 신고를 했지만, 범인을 특정할 결정적 증거가 없어 수사는 제자리걸음이다.
법적 의무 없다? vs 선량한 관리자 아니다?
관리사무소는 현행법을 방패로 삼는다. '주차장법'상 CCTV 의무 설치 대상은 30대를 초과하는 노외주차장(공공 도로가 아닌 별도 장소에 설치된 주차장)일 뿐, 아파트 부설주차장은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적 의무가 없으니 책임도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선관주의의무)' 위반 가능성을 제기한다. 공동주택관리법은 관리주체가 입주민의 재산과 안전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다. 대법원 역시 "관리주체는 입주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합리적 범위 내에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1651세대 규모의 대단지 아파트에서 범죄와 사고 예방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CCTV를 전혀 설치하지 않은 것이 과연 '합리적 조치'였는지 법정에서 다툴 여지가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소송으로 다툴 실익 있나? 변호사들 의견은
변호사들의 의견은 현실의 벽 앞에서 팽팽하게 갈린다. 김경태 변호사는 "1,651세대라는 대규모 아파트에 주차장 CCTV가 전혀 없는 것은 합리적인 관리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소송 가능성을 열어뒀다.
반면 조기현 변호사는 "관리소의 과실과 손해 발생, 손해액 모두를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며 "변호사 비용을 생각하면 설령 일부 배상 책임이 인정되더라도 실익은 적을 수 있다"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짚었다. 결국 소송을 통해 관리사무소의 책임을 일부 인정받더라도, 그 과정에서 드는 시간과 비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내 돈'으로 수리?…재발 막을 대안은 없나
A씨가 관리사무소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경찰 수사에 기대를 걸면서, 동시에 이번 사건을 입주자대표회의에 공론화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한 개인의 피해를 넘어 '우리 모두의 문제'로 만들어 CCTV 설치를 강력히 요구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법의 공백 속에 방치된 아파트 주차장의 안전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냈다. 수천 가구가 모여 사는 공동주택이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 하나의 '작은 사회'가 된 현실을 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입주민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 마련을 관리주체의 '선택'이 아닌 '의무'로 규정하는 제도적 보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