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증 위조' 의뢰 후 협박당한 10대 소녀…'공범'이 된 피해자의 딜레마
'민증 위조' 의뢰 후 협박당한 10대 소녀…'공범'이 된 피해자의 딜레마
사기 피해자이자 공문서 위조 교사범…'신고도 못 하는' 진퇴양난

좋아하는 아이돌을 보려 주민등록증 위조를 의뢰한 10대 소녀가 돈만 떼이고 되려 협박당하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민증 위조 맡겼더니…내 정보로 협박, 10대의 '자승자박'
좋아하는 아이돌을 보려 주민등록증 위조를 의뢰한 10대가 돈만 떼이고 되려 협박당하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사기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공문서 위조 교사범(범죄를 부추긴 사람)'이 된 역설적 상황에 법률 전문가들의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아이돌 보려다 '범죄자'로…덫이 된 팬심
A양은 나이 제한이 있는 아이돌 행사에 가기 위해 트위터에서 신분증 위조 업체를 찾았다. '쉽게 해결된다'는 말에 속아 돈을 보냈지만, 위조 신분증은 오지 않았다. 사기였다.
진짜 비극은 그 후에 시작됐다. 업체는 "합의금을 안 보내면 당신이 민증 위조를 의뢰한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A양의 개인정보를 무기로 역으로 협박해왔다. 사기 피해자가 순식간에 형사 처벌을 걱정해야 할 피의자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피해자인데 신고 못 하는 이유…사기꾼의 '자충수'
A양은 명백한 사기 피해자지만, 섣불리 경찰에 신고할 수 없는 처지다. 주민등록증 위조를 의뢰한 행위 자체가 '공문서 위조 교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형법 제231조는 이를 5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사기꾼의 협박이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사기꾼이 A양을 신고하려면 대화 기록이나 송금 내역을 증거로 제출해야 하는데, 이는 곧 자신의 사기(형법 제347조) 및 공갈(형법 제350조) 혐의를 스스로 경찰에 알리는 셈이 된다. 수사는 자연스레 양쪽 모두를 향하게 된다.
변호사들 "신고 가능성 0%…'미수' 감경 여지도"
전문가들은 사기꾼이 실제 신고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결론 내린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조기현 변호사는 "상대방도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실제로 신고나 고소하기는 어렵다"고 단언했다.
법무법인 심의 심준섭 변호사는 한발 더 나아가 A양의 법적 책임을 분석했다. 그는 "A양이 위조 신분증을 실제로 받지 않았으므로 범죄가 완성되지 않은 '미수'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형법 제25조 2항은 범죄 실행에 착수했으나 결과를 발생시키지 못한 '미수범'에 대해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따라서 최악의 경우라도 처벌 수위가 낮아질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현실적 대응 방안은 단호하다. 법무법인 휘명 김민경 변호사는 "즉시 연락을 차단하고, 협박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 최선"이라며 "섣불리 상대를 고소하기보다 형사 전문 변호사와 먼저 상담해 대응 전략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순간의 유혹, '디지털 주홍글씨'로…역설이 된 팬심
결국 순수했던 팬심은 범죄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는 역설적 상황으로 귀결됐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온라인 불법 거래가 어떻게 개인의 삶을 옭아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서늘한 경고다.
한번 인터넷에 남겨진 범죄 의뢰 기록과 개인정보는 언제든 다시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디지털 주홍글씨'가 될 수 있다.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낙인이 될 수 있음을 이번 사건은 명징하게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