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거짓말 증거 있는데"…경찰은 왜 '사기 아니다' 했나
"집주인 거짓말 증거 있는데"…경찰은 왜 '사기 아니다' 했나
"매물 내놨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보증금 떼인 임차인의 호소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거짓말한 임대인을 경찰은 사기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 AI 생성 이미지
전세 계약을 갱신하고, 법에 따라 3개월 전 해지 통보까지 마쳤지만 "돈이 없다"며 버티는 임대인. 심지어 "집을 매물로 내놨다"는 거짓말까지 한 정황이 드러났지만, 경찰은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사건을 덮었다.
민사소송에서 이겨도 돈 한 푼 돌려받지 못하는 임차인이 마지막 희망이었던 형사 고소마저 좌절된 상황. 법률 전문가들은 경찰의 판단을 뒤집기 위한 '결정적 한 방'이 무엇인지 집중 분석했다.
"새 세입자 구하면 준다"더니…거짓말로 시간 끈 임대인
임차인 A씨는 2024년 12월, 보증금을 5% 올려주며 전세 계약을 갱신했다. 하지만 개인 사정으로 2025년 1월, 3개월 뒤인 4월 14일에 이사하겠다고 임대인에게 통보했고, 임대인도 이를 확인했다.
그러나 약속된 퇴거일이 다가오자 임대인은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와야 보증금을 줄 수 있다"며 말을 바꿨다. 이후 "대출 상담을 하고 있다", "부동산에 매매로 내놨다"는 말만 반복하며 보증금 반환을 차일피일 미뤘다.
화가 난 A씨가 직접 부동산에 확인해 본 결과, 해당 매물은 등록된 사실조차 없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A씨는 결국 임차권등기명령, 지급명령, 채권 압류 등 모든 민사 절차를 진행했지만, 10여 개 은행을 압류해 회수한 돈은 고작 8만 원에 불과했다. 재산명시 신청마저 임대인의 '주소 불명'을 이유로 각하되면서 A씨는 망연자실했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단순 채무불이행일 뿐"
A씨는 최후의 수단으로 임대인을 사기 및 강제집행면탈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의 판단은 냉정했다. 경찰은 사기 혐의에 대해 "재계약 당시 임대인의 재정상태에는 문제 없음, 피해자의 갑작스러운 퇴거통보로 보증금 반환이 어려워진 것에 불과해 사기죄는 미성립,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판단"된다고 보았다.
강제집행면탈 혐의 역시 "피의자의 금융거래내역 확인결과 은닉 및 허위양도사실 미확인되어 증거불충분"이라며 사건을 검찰에 보내지 않는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임대인의 명백한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이를 범죄가 아닌 개인 간의 돈 문제로 판단한 것이다.
전문가들 "'거짓말'이 사기죄 입증할 결정적 단서"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경찰의 판단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다수의 변호사들은 임대인의 '거짓말'이 단순 변명이 아닌 '기망의 고의'를 입증할 핵심 증거라고 입을 모았다.
장휘일 변호사는 임대인의 거짓말을 두고 "기망의 고의를 입증할 결정적 단서입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단순히 돈을 못 주는 채무불이행 상태를 넘어 허위 사실로 임차인의 법적 대응을 지연시키고 보증금 인상분까지 편취했다면 사기죄 성립 여부를 다시 다툴 여지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이주헌 변호사 역시 "부동산에 매물을 내놓지 않았음에도 내놨다고 거짓 답변하며 시간을 끈 행위는 기망의 고의를 뒷받침하는 핵심 정황"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경찰이 간과한 '계약 이후의 거짓말'을 근거로 이의신청을 통해 검찰의 재수사를 적극적으로 촉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의신청, 어떻게 뒤집나?…"'불송치 결정서'부터 확보해야"
전문가들은 만장일치로 '불송치 이의신청'은 가능하지만, 경찰의 논리를 깨기 위한 정교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강제집행면탈 혐의에 대해 경찰은 '은닉 정황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신은정 변호사는 "임대인이 재산명시를 회피하기 위해 주소불명 상태를 만들고 지속적으로 거짓말을 한 정황 등을 묶어, 강제집행을 면할 목적이 다분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재수사를 촉구해야 한다"고 다른 시각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이의신청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신 변호사는 "지금 상황에서는 우선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불송치결정서'를 확보하여 경찰 수사의 논리적 허점을 정확히 분석하는 것이 가장 필요합니다"라고 명확한 해법을 제시했다.
결국 A씨가 이 기나긴 싸움에서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잡기 위해서는, '불송치 결정서'에 담긴 경찰의 논리를 임대인의 '거짓말'이라는 창으로 깨부수는 치밀한 법적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