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 서류 한 장에 빚더미? '상속 동의'의 무서운 함정
구청 서류 한 장에 빚더미? '상속 동의'의 무서운 함정
한정승인 중 가게 넘기려다 '단순 승인'될라…변호사들 '절대 불가' 한목소리

아버지의 빚을 피해 한정승인을 신청한 상속인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가게 영업권을 넘기려다, 구청의 '상속 동의서' 요구에 부딪혔다. / AI 생성 이미지
아버지 사망 후 빚을 피하고자 법원에 '한정승인'을 신청한 상속인. 그러나 남겨진 가게의 영업권을 새 임차인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관할 구청의 '상속 동의서' 요구에 발목이 잡혔다.
법조계는 구청의 행정 편의적 요구에 섣불리 응했다가 모든 빚을 떠안는 '단순 승인'으로 간주될 수 있다며, 가장 안전한 길은 '폐업 후 신규 등록'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상속 동의서'에 서명하는 순간, 빚 전부 떠안을 수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남겨진 빚 때문에 법원에 한정승인(상속 재산 범위 내에서만 빚을 갚는 제도)을, 다른 가족들은 상속 포기를 신청한 A씨. 모든 절차가 순조롭게 마무리되길 기다리던 그에게 예상치 못한 난관이 닥쳤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가게를 정리하며 새 임차인에게 영업 신고증을 넘겨주려 하자, 구청이 A씨에게 '상속 동의서'를, 상속을 포기한 가족들에게는 별도의 '상속포기서'와 인감증명서를 요구한 것이다.
이에 대해 법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매우 위험한 행위'라고 경고했다.
로버스 법률사무소 신은정 변호사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영업권을 승계하거나 상속 동의서를 작성하는 행위는 상속재산 처분에 해당하여 한정승인과 상속포기 효력이 무효화될 수 있으니 절대로 진행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단언했다.
법원의 한정승인 결정이 나기 전에 상속재산인 '영업권'을 임의로 처분하는 의사표시로 해석돼, 모든 빚을 상속받는 '단순승인'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홍대범 변호사 역시 "이는 상속재산인 영업권을 본인이 처분하겠다는 의사표시로 해석되어 한정승인이 무효화(단순승인 처분)될 리스크가 큽니다"라고 지적했다.
민법 제1026조는 상속인이 상속재산을 함부로 처분할 경우, 상속을 단순 승인한 것으로 본다. 법원의 최종 결정이 내려지기 전의 어설픈 서명 한 번이 모든 것을 수포로 돌릴 수 있다는 의미다.
'정리 목적이면 괜찮다?'…분쟁의 불씨는 여전
물론 일부 신중론도 제기됐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이동규 변호사는 수익을 얻으려는 목적이 아니라 단순히 가게를 정리하기 위한 절차라면 '보존행위'나 '관리행위'로 설명할 여지는 있다고 봤다.
하지만 그 역시 "가족들이 '상속에 동의한다'는 취지의 서류를 작성하는 부분은 상당히 조심하셔야 합니다"라며, 상속 포기 절차와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상속재산 처분으로 볼 것인지 여부는 결국 구체적인 계약 조건과 행위의 목적에 따라 법원에서 판단될 문제다. 법무법인 게이트 정덕 변호사는 영업권 양도 대가 없이 원상복구비용을 면제해주는 조건이라면 처분행위로 보지 않을 '여지'는 있으나, 이 또한 다툼의 소지가 남는다고 지적했다.
결국, 잠재적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가장 안전한 해법: '승계' 아닌 '폐업 후 신규 등록'
그렇다면 A씨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길은 무엇일까? 변호사들은 '승계'가 아닌 '폐업 후 신규 등록' 방식을 일관되게 추천했다.
A씨는 아버지의 사망 사실을 증명해 기존 가게를 폐업 처리하고, 새로운 임차인이 자신 명의로 영업 신고를 새로 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상속인인 A씨가 상속재산인 '영업권'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명확히 할 수 있다.
법률사무소 지헌 임대환 변호사는 "가능하다면 '승계' 대신 신규 영업신고로 진행하는 것이 상속 이슈를 가장 깔끔하게 분리합니다"라고 조언했다. 구청의 행정 절차상 요구를 따르기 전에, 그 행위가 불러올 법적 결과를 먼저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섣부른 동의서 작성이 상속 문제 전체를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