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문혁 교수의 '모르면 후회할 법 이야기'(37)] 세상을 뜰 때 남기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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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문혁 교수의 '모르면 후회할 법 이야기'(37)] 세상을 뜰 때 남기려는 것

2022. 09. 13 17:41 작성
호문혁 교수의 썸네일 이미지
homoo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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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과 유류분

유언장 자체만 보고는 유언자가 정말 유언을 했는지, 그 내용과 같은 의사를 갖고 유언한 것인지, 누군가가 내용을 몰래 바꾸지는 않았는지 등을 사후에 확인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셔터스톡

이춘풍이 곧 세상을 하직할 것을 짐작하고 처 박순이와 아들 이하남, 딸 이하숙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적어 금고에 넣어두었다. 이춘풍 사망 후에 금고를 열어 보니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유언장. 내가 죽거든 내 재산은 모두 평생 나를 위해 고생만 한 내 처에게 준다. 하남이 어렸을 때 내가 하남이 이름으로 사 둔 양주의 임야는 팔아서 하남이와 하숙이가 반씩 나누기 바란다. 이상." 이 유언장을 받아든 유족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민법에 따르면 다음 사항에 관한 것에만 법적 효력이 인정된다. ① 친생부인(親生否認)이나 인지(認知), 미성년자를 위한 후견인의 지정 등 가족관계에 관한 사항, ② 유증 등 재산의 처분에 관한 사항, ③ 상속재산의 분할 등 상속에 관한 사항, ④ 유언의 집행에 관한 사항. 그 밖의 사항, 예를 들어 유언자 자신의 유골의 처분이나 매장 장소의 지정 등은 유언장에 넣어도 법적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유언장 자체만 보고는 유언자가 정말 유언을 했는지, 그 내용과 같은 의사를 갖고 유언한 것인지, 누군가가 내용을 몰래 바꾸지는 않았는지 등을 사후에 확인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런 이유에서 민법은 유언이 법이 정한 엄격한 방식을 갖추어야 효력을 인정한다.


유언의 방식에는 ① 자필증서, ② 녹음, ③ 공증인 앞에서 작성하는 공정증서, ④ 내용을 밀봉하는 비밀증서, ⑤ 다른 사람에게 말로 불러주는 구수증서 다섯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자필증서 이외의 방식은 증인의 확인이 있어야 하고, 구수증서(口授證書)는 다른 방식의 유언이 불가능한 경우에만 인정된다. 자필증서(自筆證書)로 한 유언은 증인의 확인이 필요 없지만 유언자가 유언의 내용과 날짜, 주소, 성명을 스스로 쓰고 날인하여야 한다. 이춘풍이 자필로 쓴 위 유언장은 날짜와 주소, 성명이 모두 빠져 있으므로 법적 효력이 없다.


유언으로 하는 증여를 유증(遺贈)이라 한다. 이춘풍이 기재사항을 모두 빠짐없이 적었으면 유언으로서의 효력은 생기지만 그것으로 상속인들 사이의 재산관계가 모두 유언대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춘풍이 박순이에게 유증한 것은 효력이 있지만, 이춘풍이 생전에 아들 이하남 이름으로 취득한 임야는 소유자가 이하남이어서 상속재산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유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하남더러 소유하는 임야를 팔아서 이하숙과 반씩 나누라는 것은 이춘풍이 그 임야의 2분의1 지분을 이하숙에게 유증한다는 의사표시로 볼 수도 없다. 이하숙으로서는 이하남이 선친의 뜻에 따를 것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춘풍이 유언으로 재산을 모두 박순이에게만 증여해서 상속재산에서는 이하남과 이하숙에게 한 푼도 남겨주지 않은 것이 문제 될 수 있다. 민법은 피상속인이 상속인 중 일부나 제3자에게 많이 유증하더라도 각 상속인들에게 적어도 일정 비율은 남겨주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유류분(遺留分) 제도를 두었다. 유류분을 계산할 때는 피상속인이 사망 시에 가진 재산의 가액에 이미 상속인이나 제3자에게 증여한 재산의 가액을 더하고, 채무가 있으면 그 액수를 공제한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춘풍의 상속재산이 모두 30억원이고 이미 이하남에게 증여한 임야의 가액이 5억원이면 이를 합한 기준 재산 35억원 중에서 각 상속인의 유류분은 다음과 같다.


배우자 박순이는 법정상속분 15억원의 2분의 1인 7억 5천만 원, 이하남과 이하숙은 각기 법정상속분 10억원의 2분의1인 5억원. 그러므로 이춘풍이 전 재산 30억원을 모두 박순이에게 유증해도 이하숙은 유류분 5억원을 받는다. 이하남은 이미 5억원짜리 임야를 증여받았고, 박순이는 유류분을 초과하는 25억원을 받으므로 유류분은 해당되지 않는다. 만일 이춘풍이 위 임야를 상속인이 아닌 자선단체에 증여하였으면 사망 전 1년 안에 증여한 부분만 유류분 산정의 기준에 포함된다.


세상을 떠날 때도 지혜가 필요하다. 잘못 처리하면 자녀들 싸움만 부추길 수 있다. 잠꼬대 같은 소리지만 만일 내게 수십억원의 재산이 있으면 젊은 법학도의 독일 유학 장학기금으로 유증하고 떠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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