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지켜본 지인, 처벌 가능할까?…'방조죄'의 무거운 증명 책임
성범죄 지켜본 지인, 처벌 가능할까?…'방조죄'의 무거운 증명 책임
법조계 “단순 방관은 죄 안 돼, 범행 도운 적극적 행위 입증해야”…공소시효는 주범과 동일

성범죄 현장의 방관자는 단순히 지켜봤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하기 어렵다./셔터스톡
성범죄 현장 지켜본 친구, '방조죄' 처벌의 높은 벽…'적극적 도움' 입증해야
성범죄가 벌어지는 끔찍한 순간, 가해자의 지인이 옆에서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면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됐다.
한 성범죄 피해자가 가해자뿐만 아니라, 범행 당시 함께 있던 그의 지인마저 '방조죄'로 처벌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 물음은 범죄 현장의 '방관자'에 대한 법적 책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지켜만 봤을 뿐인데”...‘방관’과 ‘방조’의 결정적 차이
결론부터 말하면, 단순히 범죄를 지켜보기만 한 '방관(傍觀)'은 처벌 대상이 되기 어렵다. 우리 형법이 문제 삼는 것은 범죄를 용이하게 만든 '방조(幇助, aiding and abetting)' 행위다.
다수의 변호사들은 성범죄 방조죄가 성립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법무법인 LF의 박성민 변호사는 “단순히 현장을 목격했다는 이유만으로는 방조죄로 판단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 변호사는 “단순히 알고 있었거나 목격했다는 것만으로는 방조죄가 성립하지 않으며, 범죄 실행을 도와주거나, 범행을 쉽게 만들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범죄를 알면서도 막지 않았다는 도의적 비난을 넘어, 범행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는 ‘적극적 행위’가 입증돼야만 법의 심판대에 세울 수 있다는 의미다.
“장소 제공, 범행 독려”...법원이 인정하는 ‘방조’ 행위
형법 제32조는 타인의 범죄를 용이하게 하는 모든 직접·간접적 행위를 방조로 본다. 법률사무소 가온길의 백지은 변호사는 “장소를 제공하거나 범행을 수월하게 하는 등 본 가해자의 행위를 인식하면서 방관한 경우에는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범행 도구를 사주거나 망을 봐주는 것과 같은 유형적 도움뿐 아니라, “잘한다”며 범행 의지를 북돋우는 무형적, 정신적 도움까지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 다만 이 모든 행위에는 ‘고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방조범 스스로가 주범의 범죄 사실을 알면서도 그 실행을 돕는다는 명확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라미 법률사무소의 이희범 변호사가 “성범죄의 경우 논리상 방조의 성립이 쉽지는 않다”고 말하는 이유도 바로 이 고의와 적극적 행위를 피해자 측이 입증해야 하는 높은 문턱 때문이다.
“처벌 시효 10년, 주범과 동일”…늦었다고 포기하긴 이르다
방조죄 고소를 망설이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은 공소시효(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기간)다. 하지만 방조범의 공소시효는 범죄를 직접 저지른 주범과 동일하게 적용된다.
법률사무소 인도의 안병찬 변호사는 “방조범 공소시효는 정범과 동일하다”고 명확히 했다. 성인 대상 강간 및 강제추행죄의 공소시효는 10년이다. 따라서 주범에 대한 공소시효가 남아있다면, 방조범에 대한 고소 역시 가능하다.
특히 피해자가 미성년자였던 경우,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피해자가 성인이 된 날부터 공소시효가 계산되므로 처벌 가능 기간은 더욱 길어진다. 처벌 수위는 주범보다 감경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법률사무소 유(唯)의 박성현 변호사는 “중대한 경우 비슷한 수준의 처벌이 내려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방관’에 대한 분노, 법적 처벌로 이어지려면
결론적으로 성범죄 현장의 방관자를 법적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범행을 용이하게 한 구체적 행위’와 ‘고의성’이라는 두 가지 핵심 요소를 증거로 증명해야 한다. 단순히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법률 전문가들은 피해자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섣부른 고소보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증거를 토대로 법률 상담을 먼저 받아볼 것을 권고한다. 방관자에 대한 사회적, 도의적 비난은 마땅하지만, 그를 법의 심판대에 세우기 위해서는 감정적 분노를 넘어선 냉철한 법적 증명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