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우울증 끝 극단 선택…사망보험금 지급 거절한 보험사, 대법원서 제동
10년 우울증 끝 극단 선택…사망보험금 지급 거절한 보험사, 대법원서 제동
1·2심은 "자살 당시 판단력 있어" 보험사 승소
대법원 판결 뒤집고 "상황 전체 종합해 심리해야" 파기환송

광주지방법원 /연합뉴스
우울증 등 심한 정신질환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예외적으로 사망보험금 지급 대상이 될 수 있다.
10년간 우울증을 앓다 투신한 가입자에 대해 단순히 환각이나 망상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보험사의 면책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0년 앓던 우울증과 투신…자녀들 "심신상실" vs 보험사 "고의적 자살"
지난 2015년 A씨는 사망 시 2억 4000만 원을 지급받는 상해보험을 보험사와 체결했다.
이후 2022년 3월 29일, A씨는 거주하던 아파트 베란다에서 1층 주차장으로 떨어져 사망했다.
A씨의 자녀들은 상속인으로서 보험사에 사망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보험사는 A씨가 고의로 투신해 사망한 것이라며 보험금 지급 채무가 없음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보험 약관에는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를 지급 면책 사유로 규정하고 있었으나, 단서 조항으로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자녀들은 A씨가 심한 우울증과 알코올 사용장애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른 것이라고 맞섰다.
1·2심 법원 "자살 당시 판단력 있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모두 보험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판부는 A씨가 2012년경부터 우울증을, 2020년경부터 알코올 사용장애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아온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A씨에게 환청이나 환각, 망상과 같은 정신병적 증상이 나타난 기록이 없고, 자녀들의 도움 없이 혼자 일상생활을 영위해 온 점을 짚었다.
또한 추락 장소인 베란다 난간의 높이가 약 105cm인 점 등을 고려할 때, 투신 결과에 대한 인지력과 판단력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보험사의 면책 사유가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상황 전체를 종합적으로 심리했어야" 파기환송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2025년 6월 26일,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우울장애 등을 겪던 사람이 사망할 당시 환각이나 망상 상태에 있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자살자의 나이, 발병 시기, 자살 무렵의 행태, 주위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기존 법리를 재확인한 것이다.
대법원은 A씨가 10년간 우울장애 등 정신질환에 시달렸고 사망 2주 전 자해를 시도하기도 했으며, 사망 무렵 증세가 중등도 이상으로 심각해진 점에 주목했다.
A씨에게 우울장애 이외에 자살에 이르게 될 다른 원인이나 동기를 찾기 어렵고, 기존 우울증으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방해받을 수 있다는 주치의 등의 의학적 소견이 제출된 점도 언급했다.
이에 대법원은 "원심은 A씨의 우울장애 진료기록 등을 근거로 자살에 이르게 된 상황 전체의 양상과 과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A씨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는지를 심리·판단했어야 한다"며, 원심판결에 약관 해석 및 심리 미진의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