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미끼 선불폰 개통, 9억 보이스피싱 공범 혐의…'고의성' 입증이 관건
대출 미끼 선불폰 개통, 9억 보이스피싱 공범 혐의…'고의성' 입증이 관건
대출 상담사 사칭 조직에 속아 선불폰을 개통했다가 9억 원대 사기 공범으로 몰린 남성. 법조계는 범죄 이용 가능성을 몰랐다는 '고의 없음' 입증이 무죄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A씨는 대출을 위해 개통한 선불폰이 9억 원대 보이스피싱에 쓰여 사기 공범으로 몰렸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내 폰이 9억 사기 도구로?…'피해자'와 '공범' 가르는 '고의성' 입증
평범한 일상을 살던 A씨의 삶은 전화 한 통으로 송두리째 흔들렸다. 자신을 경찰 수사관이라 밝힌 목소리는, A씨 명의로 개통된 선불폰이 9억 원대 보이스피싱 범죄에 사용됐다고 통보했다.
A씨는 대출을 받으려 했을 뿐이라고 항변했지만, 순식간에 거액 사기 사건의 '공범'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해지하면 신용불량자…그를 옭아맨 상담사의 속삭임
A씨는 경찰의 통보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대출을 받으려 했을 뿐, 범죄에 가담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대출 상담사와 나눈 통화 녹음 파일이 있었다. "만약 선불폰을 해지하면 당신의 모든 신용 생활이 정지될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까지 고스란히 담긴 증거였다.
하지만 9억 원이라는 거액의 피해가 발생한 사건에서 수사기관의 시선은 차가웠다. 경찰은 A씨의 거주지와 대구가 멀다는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시간을 내서 대구로 와 조사를 받으라"는 단호한 입장을 고수했다.
내 폰이 9억 사기 도구로?…'피해자'와 '공범' 가르는 두 단계
법률 전문가들은 A씨가 '피해자'가 아닌 '피의자'로서 두 단계의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1단계 기본 범죄는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이다. 타인에게 통신 서비스를 제공할 목적으로 자기 명의 휴대폰을 개통해주는 행위(속칭 대포폰) 자체만으로도 1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A씨의 운명을 가를 2단계 핵심 범죄는 '사기방조' 혐의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사용될 것을 알면서도 선불폰을 넘겼다고 판단되면, 9억 원대 사기 범죄의 공범으로 무거운 처벌을 피할 수 없다.
여기서 핵심은 '미필적 고의'의 인정 여부다. 법정에서 판사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혹시 대출 방식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내 선불폰이 어딘가 좋지 않은 일에 쓰일 수도 있겠다고 짐작하면서도, '설마 무슨 일 있겠어'라며 눈감아 버린 것은 아닌가?" 이 질문에 명확히 반박하지 못하면 유죄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변호사들의 경고: "첫 조사가 운명을 결정합니다"
변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골든타임은 바로 지금"이라며 신속한 법적 대응을 주문했다. 피해 금액이 막대한 만큼, 수사 초기부터 자신의 무고함을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현 변호사는 먼저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통화 녹음 파일이 있는 것은 천만다행입니다."
이어 핵심 주장 전략을 제시했다. "대출을 받기 위해 선불유심을 전달했을 뿐, 보이스피싱 범행에 사용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점을 첫 조사부터 일관되게 주장해야 합니다."
김경태 변호사는 추가 전략을 보탰다. "대출상담을 빙자한 기망에 의해 선불폰을 개통하게 된 점, 실제 금전거래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점 등 본인이 피해자임을 입증할 자료를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변호인을 통해 사건을 거주지 관할 경찰서로 이송해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한순간의 절박함이 9억 원대 사기 공범이라는 족쇄로 돌아온 이번 사건. '대출'이나 '고액 알바'를 미끼로 신분증, 체크카드, 선불폰을 요구하는 것은 범죄 조직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상식 밖의 요구에는 의심하고 단호히 거절하는 것만이 억울한 피의자가 되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