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친모 두고…'사망한 부모'와 먼저 이별하라는 법
90세 친모 두고…'사망한 부모'와 먼저 이별하라는 법
호적상 부모 20년 전 사망, 뒤엉킨 가족관계 풀기 위한 법적 쟁점

혼외자로 태어나 사망한 이의 자식으로 등록된 A씨가 90세 친모와 법적 가족이 되기 위한 여정에 나섰다. / AI 생성 이미지
혼외자로 태어나 법적으로는 이미 20년 전 사망한 부모의 자식으로 남은 A씨. 눈앞에 90세 친모를 두고도 혈연을 되찾기 위해선, 서류 속 부모와 먼저 법적 이별을 해야 하는 기막힌 상황에 놓였다.
사망자를 상대로 한 소송, 그리고 ‘사망을 안 날로부터 2년’이라는 제척기간의 벽까지. 뒤엉킨 가족사를 바로잡기 위한 험난한 여정과 법률 전문가들의 명쾌한 해법을 집중 취재했다.
'유령 부모'와 이별해야 친모를 찾는다? 엇갈리는 조언들
평생을 진짜 부모가 아닌 서류상의 부모 밑에 자식으로 등재돼 살아온 A씨. 그를 낳아준 90세 친모는 생존해 있지만, 가족관계등록부상 부모는 20년도 더 전에 세상을 떠났다.
더 늦기 전에 뒤바뀐 운명을 바로잡으려 법의 문을 두드렸지만, 시작부터 혼란에 빠졌다. 일부는 사망한 부모와의 관계를 끊는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소송과 친모와의 관계를 인정받는 ‘친생자관계존재확인’ 소송, 두 가지를 모두 거쳐야 한다고 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하나의 소송으로 충분하다는 의견이 맞섰다.
도대체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법무법인 가족 엄경천 변호사는 “법률상담은 선거나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에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법리로 결판이 납니다”라며 명확한 법리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왜 두 개의 소송이 필요한가: 법원의 ‘선 정리, 후 등록’ 원칙
대부분의 법률 전문가는 원칙적으로 두 가지 법적 확인 절차가 모두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의 법적 관계를 먼저 정리해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논리다.
법무법인 태일 최지우 변호사는 “현재 가족관계등록부에 친부와 호적상 어머니의 자녀로 등재되어 있다면, 기존 친자관계를 먼저 정리해야 합니다”라고 설명하며, 그 이유에 대해 “기존 부모와의 친자관계가 법적으로 유지되는 상태에서는 새로운 친자관계를 바로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즉, 서류상 부모와의 관계가 ‘없었음’을 법원 판결로 확인받아야, 비로소 진짜 어머니를 호적에 올릴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이는 호적상 부모가 사망했더라도 생략할 수 없는 절차다.
'사망 후 2년'의 벽…20년 넘었는데 소송 가능할까
가장 큰 난관은 ‘제척기간’이다. 우리 민법(제865조 제2항)은 친자관계 소송의 당사자가 사망한 경우, ‘그 사망을 안 날로부터 2년 내에’ 검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A씨의 호적상 부모는 20년 전에 사망했기에, 법 조문만 보면 소송 자체가 불가능해 보인다. 이 지점에서 전문가의 조언은 신중하지만 희망적이다.
법률사무소 HY 황미옥 변호사는 “<친생자부존재 소송>의 경우, 친자관계를 실질에 맞도록 바로 잡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기에 법이 규정한 사망을 안 날로부터라는 기산점을 다소 유연하게 해석해 주는 경향이 있으나, 법문상 제척기간 규정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므로 소제기 시점부터 제소 논리를 명확히 갖추고 소송 절차 돌입하여야 합니다”라고 조언했다.
실체적 진실을 중시하는 법원이 형식적인 기간의 벽을 넘어설 여지가 있지만, 소송 초기부터 치밀한 법적 논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두 소송을 한 번에'…전문가들이 제시한 최적의 길
다행히 두 번의 재판을 따로 치를 필요는 없다. 여러 변호사들은 두 개의 청구를 하나의 소송으로 묶어(병합)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법무법인 심 심규덕 변호사는 “실무상 두 청구를 병합하여 하나의 소송으로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절차가 이중으로 소요되지는 않습니다”라고 명확히 했다.
결국 핵심은 신속한 증거 확보다. 특히 90세 고령인 친모의 건강을 고려해 유전자 검사를 서두르는 것이 관건이다.
법무법인 가족 엄경천 변호사는 “어머니(생모) 연세가 많으시니까 바로 유전자 검사를 받고 유전자 시험 성적서를 소장에 서증으로 첨부하면 됩니다”라며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제시했다.
A씨가 뒤틀린 가족관계를 바로잡고 진짜 어머니를 되찾기 위해서는, 두 소송을 하나로 묶어 제척기간에 대한 명확한 논리를 세우고, 유전자 검사라는 결정적 증거를 신속히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