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역할만 하라'…술만 마시면 필름 끊기는 남편의 운명은
'아빠 역할만 하라'…술만 마시면 필름 끊기는 남편의 운명은
13년간 반복된 블랙아웃, 아내의 최후통첩에 법적 쟁점은?

잦은 음주와 '필름 끊김'으로 13년차 부부가 이혼 위기에 처했다. / AI 생성 이미지
“저랑 이혼할 거라고. 아들 역할, 아빠 역할만 하라고 합니다.” 결혼 13년에 술만 마시면 기억을 잃는 남편에게 아내가 차가운 이혼 통보를 날렸다.
남편은 과거 아내가 쓴 ‘양육권 포기 각서’를 희망으로 걸어보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효력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남은 건 대출금이 대부분인 빌라 한 채.
과연 법원은 이 가정을 어떻게 판단할까? 9인의 변호사 답변을 토대로 세 가지 핵심 쟁점을 짚어봤다.
'필름 끊겨도 폭력 없었다'…벼랑 끝에 선 13년차 가장
결혼 13년 차 A씨에게 술은 '기억 삭제 스위치'와 같았다. 친구를 만나거나 회식을 한 뒤 과음하면 어김없이 전날 밤의 기억이 통째로 사라진다.
폭력이나 폭언은 없었지만, 방금 한 말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남편의 모습은 아내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아내는 동거 시절부터 몇 번이나 집을 나갔고, 결혼 후에는 '양육권 포기 각서'까지 쓰고 1년간 별거하기도 했다.
아이 때문에 힘겹게 재결합했지만, A씨가 또다시 필름이 끊긴 채 귀가하자 13년간 곪았던 상처가 터져 나왔다. 아내는 한 달째 침묵하다가 A씨의 사과에 “당신과 이혼할 것이니, 아들 역할, 아빠 역할만 하라"며 관계의 끝을 알렸다.
A씨는 13년간 쉼 없이 일하며 쌓인 스트레스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 아내의 고충을 이해하지만, 텅 빈 통장과 대출만 가득한 빌라 앞에서 막막하기만 하다.
'습관성 블랙아웃', 이혼 사유가 될까?
A씨는 폭력이나 외도가 없었기에 이혼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나, 법률 전문가들의 시각은 달랐다.
법무법인 게이트의 정덕 변호사는 “음주로 인한 잦은 필름 끊김과 다툼은 그 자체만으로 곧바로 재판상 이혼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민법 제840조 제3호의 부당한 대우 또는 제6호의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빈도와 정도, 가족에게 미친 영향을 종합적으로 살펴 판단하게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즉, 특정 행위가 없더라도 반복된 음주 문제로 부부 간 신뢰가 파탄이 났다면, 법원이 이혼을 인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법률사무소 아델 김빛나 변호사 역시 “단순히 술을 마신다는 사실만으로 이혼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과음하여 블랙아웃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배우자가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겪거나 정상적인 혼인생활이 어려워졌다면 재판상 이혼사유로 주장될 수 있습니다”라고 덧붙이며, 문제가 장기간 반복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반면, 리라법률사무소 김현중 변호사는 “이혼 사유가 되기 어려워 보인다”는 간결한 반대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아내가 쓴 '양육권 포기 각서'의 효력은?
A씨가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은 아내가 과거에 직접 작성한 '양육권 포기 각서'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이 각서가 법정에서 결정적인 증거가 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법원이 양육권자를 결정할 때 부모 사이의 약속보다 '자녀의 복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기 때문이다.
법률사무소 한강 이주한 변호사는 “두 번째로 과거 배우자가 양육권 포기 각서를 작성하고 집을 나갔던 부분은 참고자료 정도로는 활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양육권이나 친권을 판단할 때는 과거의 각서 자체보다 현재 자녀의 복리와 양육환경이 더 중요하게 고려됩니다.”라고 강조했다.
결국, 13년간 주양육자 역할을 해온 아내의 역할과 달리, 남편의 반복된 음주 문제는 양육자 지정에 오히려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텅 빈 통장'과 '빚뿐인 집'…재산분할의 셈법은?
모아 둔 돈 한 푼 없이 대출금만 남은 빌라. 재산분할은 어떻게 될까?
재산분할의 핵심은 명의가 아닌 '혼인 중 공동의 노력으로 형성했는가'이다. 따라서 대출이 있는 빌라도 분할 대상이 된다.
법무법인 쉴드 장기훈 변호사는 “빌라는 혼인 중 취득한 재산이면 명의와 무관하게 분할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고, 남은 대출은 재산가치 산정에 반영됩니다”라고 설명했다.
아내가 13년간 전업주부였다는 점도 분할 비율에 큰 영향을 미친다. 김형민 변호사는 “아내가 13년 동안 전업주부였더라도 가사와 양육의 기여가 인정되어, 질의자님이 외벌이로 생계를 꾸려 왔다고 해서 아내의 기여도가 없다고 보지 않고, 적어도 35% 내외의 기여도가 인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내다봤다.
법원은 가사와 육아를 통한 아내의 기여를 남편의 경제활동 못지않게 중요한 재산 형성 기여로 평가하므로, 빌라의 현재 시세에서 남은 대출금을 뺀 순자산을 기준으로 기여도에 따라 재산을 나누게 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