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핵심 증거 CCTV, 경찰이 확보 안 해 사라졌는데…수사관 책임 물을 수 있나?
성폭력 핵심 증거 CCTV, 경찰이 확보 안 해 사라졌는데…수사관 책임 물을 수 있나?
장애인 성폭력 사건, 경찰이 복도 CCTV 영상 놓쳐 영구 소실…피해자, 국가배상 소송과 함께 경찰 고소 검토

학교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서 경찰이 핵심 증거인 CCTV를 확보하지 않아 증거가 소실됐다. / AI 생성 이미지
학교에서 발생한 장애인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A씨는 수사 과정에서 더 큰 상처를 입었다. 사건의 진실을 밝혀줄 핵심 증거인 CCTV 영상이 경찰의 미온적인 대처로 영영 사라져 버린 탓이다.
지난 2022년, A씨는 학교 내에서 피의자로부터 껴안기, 입맞춤 등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 하지만 수사를 맡은 경찰은 복도에 설치된 CCTV를 확보하지 않았고, 결국 영상은 보존 기간이 지나 삭제됐다.
A씨는 현재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는 한편, 당시 수사관과 결재권자를 직무유기 등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 법률 자문을 구했다. 부실 수사로 증거를 날린 경찰관에게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성폭력 핵심 증거 CCTV, 보존기간 지나 영구 소실
A씨의 피해는 교실과 복도에서 발생했다. 피의자는 수사 과정에서 A씨를 껴안은 사실과 일부 성적인 발언을 한 사실을 인정했다. 당시 교실에는 다른 학생들이 있었고, 피해자가 특정한 목격자도 있었다.
하지만 수사를 맡은 경찰관은 복도에 설치된 CCTV를 확인하거나 확보하지 않았다. 결국 영상은 보존 기간 만료로 소실됐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핵심인 사건에서 확보 가능했던 객관적 증거가 사라진 것이다.
또한 경찰은 A씨가 지목한 중요 목격자를 직접 조사하는 대신 서면 진술로 대체했다. A씨는 피의자의 일부 자백과 다른 증거들을 경찰이 충분히 검토했는지도 의문을 제기했다.
경찰의 '부실 수사', 직무유기죄 될까?…"의식적 방임 입증이 관건"
변호사들은 경찰의 수사 부실이 직무유기죄로 처벌받기 위해서는 '고의성' 입증이라는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수사가 미흡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직무를 의식적으로 포기하거나 내버려뒀다는 점이 증명돼야 한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한강 이주한 변호사는 "직무유기는 단순한 부실수사나 판단착오만으로 인정되는 범죄가 아니다"라며 "공무원이 수행해야 할 직무를 의식적으로 방임하거나 포기한 정도에 이르렀는지가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제로변호사 홍윤석 변호사도 "사안은 적극적 방해보다는 '수사 의무의 태만'에 무게가 실려 있어 직무유기죄를 주된 법리로 검토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법적으로 직무유기죄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해질 수 있다.
CCTV 미확보가 핵심…목격자 서면조사는 '수사 재량'
변호사들은 여러 쟁점 중에서도 CCTV 영상을 확보하지 않은 부분이 직무유기 혐의를 다툴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짚었다.
법무법인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CCTV"라며 "수사관이 영상의 존재와 보존기간, 핵심 증거라는 점까지 인식하면서도 특별한 이유 없이 확보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직무유기 주장의 핵심 사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중요 목격자를 서면으로 조사한 점이나 피의자 진술 검토가 미흡했다는 점 등은 수사기관의 재량 범위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직무유기죄를 묻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법무법인 이엘 민경철 변호사는 "수사 및 증거판단에 관한 재량의 영역에 해당한다"며 "결과적으로 CCTV가 확보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담당 수사관에게 형사책임이 성립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형사고소보다 '국가배상'이 현실적일 수도"
일부 변호사들은 수사관 개인에 대한 형사고소보다 현재 진행 중인 국가배상청구 소송에 집중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해결책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형사처벌은 수사관의 '고의'를 입증해야 하지만, 국가 배상은 '과실'만 입증해도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로 법률사무소 한대섭 변호사는 "수사관 개인을 형사 고소하는 것보다는 현재 진행 중인 국가배상청구소송에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국가배상에서는 수사관의 과실만 입증돼도 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편율 신상의 변호사 역시 "국가배상 절차는 수사관의 과실만으로도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받을 수 있으므로, 수사기록을 바탕으로 초동 조치의 과실을 논리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 대응"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