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비 떠넘기는 집주인, 계약 해지 가능할까?
수리비 떠넘기는 집주인, 계약 해지 가능할까?
입주 4개월 만에 보일러·타일·누수 '수리 폭탄'... 민법 623조에 명시된 임대인 수선의무와 세입자의 권리 총정리

민법상 보일러, 누수 등 주요 시설의 수선 의무는 집주인에게 있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보일러 고장났는데 네가 고쳐"... 집주인 갑질에 4개월차 세입자 '분통', 법적 대응 나선다면?
이사 온 지 고작 4개월, 새 보금자리에 대한 단꿈은 악몽이 됐다. 보일러 고장, 욕실 타일 탈락, 옥상 누수까지 집은 망가져 가는데, 집주인은 "세입자가 알아서 고치라"며 수리비를 떠넘기고 있다.
참다못한 세입자는 결국 '계약 해지'라는 마지막 카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수리비는 세입자 몫'?… 4개월차 세입자의 눈물
A씨는 입주 4개월 차에 접어든 평범한 세입자다. 하지만 그의 거주 공간은 더 이상 평범하지 않다.
겨울철 필수인 보일러가 고장 나 수리비 폭탄을 맞았고, 욕실 벽에 붙어있어야 할 타일은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옥상 방수 문제까지 터졌다. 심지어 LED 전등이 고장 나자 집주인은 이마저도 A씨에게 수리를 요구했다.
A씨는 "임대인의 의무를 회피하는 태도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계약을 해지할 수는 없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법의 저울은 누구 편? '집주인 수선 의무' 명시한 민법 623조
법은 A씨와 같은 세입자의 손을 들어줄까? 전문가들은 민법 제623조를 핵심 근거로 제시한다. 법무법인 반향의 정찬 변호사는 "민법 제623조에 따르면 임대인은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고 계약 존속 중 그 사용,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명확히 했다.
즉, 세입자가 돈을 내고 빌린 집을 계약 기간 동안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유지·보수할 책임은 기본적으로 집주인에게 있다는 의미다.
대법원 판례 역시 "수선하지 않으면 계약 목적에 따라 사용·수익할 수 없는 상태가 될 정도라면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부담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보일러, 타일, 옥상 방수… 변호사들 "명백한 집주인 책임" 한목소리
A씨가 겪는 문제들은 대부분 집주인의 수리 책임 범위에 해당한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더신사 법무법인의 장휘일 변호사는 "보일러, 욕실 타일, 옥상 방수 등 주요 시설의 수리 의무는 임대인이 부담한다"며 "세입자는 주택 사용에 관련된 일상적인 소규모 수리를 제외한 수리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법률사무소 태린의 김민규 변호사 역시 "말씀하신 비용은 임대인이 책임져야 할 상황"이라고 잘라 말했다. 다만, 전등 교체와 같은 '소모품'의 경우는 의견이 갈렸다. 법무법인 인화 김명수 변호사는 "수명을 다한 전등 교체는 소모품에 해당하므로 임차인이 비용을 들여 교체하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더는 못 살겠다" 계약 해지, 가능할까?
그렇다면 집주인의 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계약을 중도에 끝낼 수 있을까? 다수 변호사들은 '가능하다'고 답한다.
법무법인 창세 박영재 변호사는 "임대인이 고의로 수리 의무를 회피해 주거 환경을 악화시키는 경우 민법 제623조에 따라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임대인의 책임 방기로 인해 세입자가 집을 계약한 목적(정상적인 거주)을 달성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면, 계약을 깰 정당한 사유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신중론도 제기된다. 법무법인 심의 심교준 변호사는 "계약 해지는 법원에서 좀 더 엄격한 요건을 요구한다"며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명수 변호사는 한발 더 나아가 "이러한 문제만으로 임대차 목적 달성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므로 계약 해지가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계약 해지 원한다면… '내용증명'부터 보내라
전문가들은 섣부른 감정적 대응 대신 법적 절차를 차분히 밟을 것을 권고한다. 계약 해지를 원한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집주인에게 '내용증명' 우편을 보내는 것이다.
수리가 필요한 부분을 명시하고, '상당한 기간'(통상 7~14일)을 정해 의무를 이행하라고 최고(상대방에게 일정한 행위를 하도록 요구하는 통지)해야 한다.
이 기간에도 집주인이 묵묵부답이라면, 그때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보증금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 만약 집주인이 보증금 반환을 거부하면 결국 '임대차보증금반환청구' 소송 등 법적 조치로 나아가야 한다.
법률사무소 유(唯)의 박성현 변호사는 "계약 해지를 고려한다면 변호사 상담을 통해 법적 절차를 명확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전문가의 조력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