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초 스쳤는데 성추행범…'꽃뱀' 메모에 뒤집힌 군 생활관
0.5초 스쳤는데 성추행범…'꽃뱀' 메모에 뒤집힌 군 생활관
동기 허벅지 만졌다가 가해자 몰린 병사, '합의금 4천만 원 노린 함정' 주장…군 성범죄 무고 논란

장난으로 동기의 허벅지를 스친 공군 병사가 성범죄 피의자가 되었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너 찔러 합의금 4천만 원 먹을게"…동기 한마디에 군 생활이 지옥으로 변한 병사의 절규
동기의 허벅지를 0.5초 스쳤을 뿐인데, 한 공군 병사의 군 생활은 한순간에 성범죄자의 기록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장난으로 시작된 행동이 돌이킬 수 없는 형사 사건으로 비화하면서, 군대 내 성범죄 처벌 기준과 무고 가능성을 둘러싼 날 선 공방이 예고된다.
'에잇!' 추임새와 0.5초…악몽의 시작
사건은 지난 10월, 공군 병사 A씨가 근무 휴식 중 동기 B씨와 대화하다 벌어졌다. A씨는 "에잇!"이라는 추임새와 함께 B씨의 허벅지를 0.5초간 스치듯 만졌다. A씨는 친근감의 표시이자 장난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B씨는 이를 '성추행'이라며 군 수사기관에 신고했다. 여기에 지난 2월 생활관 메모지에 있던 B씨 이름 옆에 뱀 이모티콘을 그린 일까지 '자신을 돈을 노리는 여성(꽃뱀)에 비유한 성희롱'이라며 함께 문제 삼았다.
신고가 접수되자 군은 즉시 '가피분리 조치'(피해자 보호를 위해 가해자로 지목된 병사를 다른 부대로 보내는 조치)를 내렸고, A씨는 하루아침에 동기들과 격리돼 '성범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게 됐다.
"합의금 4천, 휴가 60일 고맙다"…함정인가, 피해자의 절규인가
A씨는 B씨의 신고가 처음부터 불순한 의도를 가진 '함정'이었다고 절규한다. 신체 접촉 직후 B씨가 정색하기에 즉시 사과했고, 당시 험악한 분위기도 아니었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진짜 문제는 그 이후에 터져 나왔다. B씨가 약 3주간 주변에 "너 찔러서 합의금 4000만원 먹을게", "청원휴가 60개 고맙다"는 식의 협박성 발언을 공공연히 했다는 것이다.
A씨는 B씨가 신고 직전 선임들에게 청원휴가 가능 여부를 묻고 다녔다는 증언과, 협박성 발언을 들은 다수의 증인까지 확보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B씨의 행동이 성적 수치심에서 비롯된 피해 호소가 아닌, 합의금과 휴가를 노린 계획된 신고라는 주장이다.
'벌금 없는 징역형'…군 성범죄, 한번 걸리면 끝장?
법률 전문가들은 A씨의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혐의를 벗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군형법상 강제추행죄는 '벌금형 없이 최소 1년 이상의 징역형'만 규정하고 있다. 유죄 판결은 곧 실형 선고와 전과자 낙인을 의미하기에, 일반 형사사건보다 훨씬 치명적이다.
군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폐쇄적인 군 조직 특성상 성범죄는 매우 엄격하게 다뤄져 수사 초기부터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일관되게 진술하고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운명을 가른다"고 조언했다.
상대방의 합의금 요구 등 불순한 동기를 입증하는 것이 '무고죄'(허위 사실로 타인을 처벌받게 할 목적으로 신고하는 범죄) 입증의 핵심이지만, 객관적 증거로 상대의 거짓말을 증명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싸움이다.
장난과 범죄 사이, 군 사법은 누구를 지킬 것인가
결국 이 사건은 A씨의 행동을 '장난'으로 볼지, '성적 수치심을 유발한 범죄'로 볼 것인지에 대한 법원의 판단에 달리게 됐다. 설령 A씨에게 성적인 의도가 없었더라도, 법원은 행위자와 피해자의 관계, 당시 상황, 그리고 '피해자가 느낀 감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성범죄 여부를 판단한다.
장난으로 던진 돌이 한 병사의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형사 사건으로 비화한 지금, 군 사법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엄격한 성범죄 처벌 기준이 피해자 보호라는 순기능을 넘어, 악의적 신고에 대한 방어막 없이 또 다른 억울한 피해자를 낳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군 사법 시스템의 성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