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값 4만원에 합의금 120만원? 무전취식의 함정
술값 4만원에 합의금 120만원? 무전취식의 함정
실수로 계산 잊었을 뿐인데…'30배 배상' 요구는 법적 근거 없어

술에 취해 잊은 술값에 대해 주인이 30배의 합의금을 요구했으나, 법조계는 고의가 없는 실수라면 과도한 요구에 응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 AI 생성 이미지
친구와 술을 마시고 취해 깜빡 잊은 술값 4만 원. 가게 주인은 “무전취식은 30배 배상, 안 내면 감방 간다”며 120만 원의 합의금을 요구했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고의가 없는 실수라면 터무니없는 요구에 응할 필요가 없으며, 특히 무전취식은 피해자와 합의해도 경찰 조사는 받아야 하는 범죄라고 명확히 밝혔다.
"합의해도 경찰 조사는 필수입니다"
친구와 술을 마시다 만취해 3만~4만 원의 술값을 내지 않고 나온 A씨. 며칠 뒤 경찰로부터 무전취식 혐의로 조사받으러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깜짝 놀란 A씨가 가게 주인에게 전화해 사과하고 즉시 결제하겠다고 하자, 주인은 "무전취식은 30배 배상이 원칙"이라며 120만 원을 요구했다.
A씨가 망설이자 90만 원, 50만 원으로 금액을 낮췄지만 A씨는 이마저도 과도하다고 느꼈다. 이 상황에서 가장 먼저 알아야 할 법적 사실은 무엇일까?
김동현 변호사는 "무전취식은 합든 안 하든 경찰조사는 받아야 합니다. 반의사불벌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지만, 무전취식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아 피해자와 합의하더라도 수사기관의 조사는 의무적으로 이뤄진다는 뜻이다.
법조계 "'30배 배상'은 근거 없는 주장, 과도한 합의금 응할 필요 없어"
그렇다면 업주가 요구하는 '30배 배상'은 타당할까? 법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법적 근거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경태 변호사는 "업주가 주장하는 매출액의 삼십 배 배상이라는 규정은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라며 "의도적인 무전취식이 아닌, 만취 상태에서의 실수로 보이는 정황이 있고, 즉시 사과와 함께 정상적인 결제 의사를 밝히신 점은 중요한 정상참작 사유가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즉, A씨의 행동이 고의가 아닌 실수임을 입증할 요소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박성현 변호사 역시 "합의 대신 법적 절차에 따라 정당한 결제를 진행하는 것이 더 합리적입니다"라고 조언했다.
업주가 민사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낮다. 김동현 변호사는 "이후 업주가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것이 가능하나, 실제 술값 이상의 손해를 청구하기는 어렵다고 보입니다"라고 분석했다.
사기죄와 경범죄, '고의성'이 운명 가른다
무전취식은 '고의성' 여부에 따라 처벌 수위가 극명하게 갈린다.
법적 분석에 따르면, 처음부터 돈을 낼 의사나 능력 없이 음식을 주문했다면 '기망(속임수)' 행위가 인정돼 형법상 사기죄(20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로 무겁게 처벌될 수 있다.
반면 A씨처럼 술에 취해 결제를 잊는 등 고의가 없었다고 판단되면 경범죄처벌법이 적용된다. 이 경우 '정당한 이유 없이 제값을 치르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돼 1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등 가벼운 처벌에 그친다.
A씨의 경우 ▲1차 술집에서 정상 결제한 점 ▲CCTV에도 만취 모습이 담겼을 가능성이 큰 점 ▲경찰 연락 후 즉시 사과하고 변제 의사를 밝힌 점 등은 고의가 없었음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다.
합리적 합의 원한다면 '처벌불원서'는 필수
만약 업주와 원만하게 사건을 해결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실제 피해액인 3만~4만 원 수준에서 합의를 시도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이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합의 후 '처벌불원서'나 '고소취하서'를 받는 것이다.
법적 분석에 따르면, 이 서류는 비록 경찰 조사를 멈추게 할 수는 없지만, 피해자가 용서했고 피해가 회복되었음을 증명하는 결정적 자료가 된다. 이를 수사기관에 제출하면 처벌 수위를 크게 낮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결국 터무니없는 합의금 요구에 덜컥 응하기보다, 법적 절차에 따라 침착하게 대응하며 고의가 없었음을 소명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해결책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