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배달 알바의 눈물…'몰랐다'는 50대 가장은 감옥 피할 수 있나
1억 배달 알바의 눈물…'몰랐다'는 50대 가장은 감옥 피할 수 있나
불황 속 '생계형 범죄' 내몰리는 서민들…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의 법적 쟁점과 생존 전략

단순 심부름인 줄 알고 '현금 배달' 아르바이트에 나섰다가 보이스피싱 공범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 50대 가장 A씨. 그의 운명은?/셔터스톡
'단순 심부름인 줄'…1억 원 옮긴 50대 가장, 보이스피싱 공범 혐의로 법정에
오토바이 배달로 생계를 꾸리던 50세 가장 A씨. 차상위계층인 그에게 '고수익 현금 배달' 아르바이트는 외면하기 힘든 제안이었다. 하지만 2주간 1억 원을 전달한 끝에 그를 기다린 것은 거액의 수수료가 아닌 차가운 수갑이었다.
경기 불황의 그늘 속에서 A씨처럼 자신도 모르게 범죄의 '손발'이 되어버리는 생계형 현금수거책이 급증하는 가운데, 한 가장의 눈물은 우리 사회와 사법부에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뭔가 이상했지만…" 법원, '미필적 고의' 어떻게 판단하나?
A씨는 "단순한 돈 전달 심부름인 줄 알았다"고 절규하지만, 법의 심판은 그의 생각보다 냉혹할 수 있다. 사건의 최대 쟁점은 A씨에게 범죄의 '고의성'이 있었는지다.
법원은 '미필적 고의(범죄 발생 가능성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용인한 심리 상태)'를 폭넓게 인정하는데, A씨의 사례는 이 법리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법무법인 공명의 김준성 변호사는 "대부분의 연루자들이 범죄에 가담할 의사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법원은 여러 객관적 사정을 종합해 고의 여부를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리라법률사무소 김현중 변호사에 따르면 재판부는 A씨가 ▲통상적인 배달 업무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많은 대가를 약속받았는지 ▲업체 측과 추적이 어려운 텔레그램으로만 소통했는지 ▲'금융기관 직원을 사칭하라'거나 '모자를 깊게 눌러쓰라'는 등의 구체적인 지시를 받았는지 등을 따져볼 것이다.
김 변호사가 지적한 이런 기준들에 비춰 '뭔가 이상하다'고 의심할 정황이 충분했다면, A씨의 '몰랐다'는 주장은 힘을 잃게 된다.
"나는 '손발'일 뿐인데"…현금수거책, 왜 중범죄인가?
설령 A씨가 보이스피싱 조직의 실체를 몰랐다 해도, 그가 범죄의 완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법무법인 태강의 정재영 변호사는 "현금수거책은 피해자로부터 돈을 건네받는 마지막 단계로, 범죄 완성에 필수적"이라며 법원이 이를 가볍게 보지 않는 이유를 짚었다. 로티피 법률사무소 최광희 변호사 역시 "현금수거책은 범행 구조의 핵심으로 평가되기에 사기방조 또는 공범으로 엄중히 처벌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즉, A씨가 아무리 억울함을 호소해도 범죄 조직의 '최종 해결사' 역할을 수행했다는 객관적 사실 자체를 뒤집기는 어렵다.
실형이냐 집행유예냐…'1억'과 '차상위계층' 사이, 운명의 저울추
결국 A씨의 운명은 재판부가 어떤 양형(형벌의 정도)을 결정하느냐에 달렸다. 그의 사건에는 실형과 집행유예를 가를 요소들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더신사 법무법인 유선종 변호사는 "1억 원이라는 피해 규모와 2주간 5~6회에 걸친 반복적 범행은 실형 선고 가능성을 높이는 중대한 사유"라고 지적했다.
반면, 희망의 불씨도 있다. 법무법인 오른의 백창협 변호사는 "피해 변제가 양형에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 A씨의 경우 마지막 범행액이 모두 회수돼 피해가 실제로 발생하지 않은 점은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
여기에 JY법률사무소 이재용 변호사가 언급한 ▲초범인 점 ▲50세의 나이와 차상위계층이라는 절박한 경제 사정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처지 등은 재판부가 정상 참작을 통해 집행유예를 선고할 유력한 근거가 된다.
"골든타임은 바로 지금"…벼랑 끝 가장의 생존 전략
변호사들은 '수사 초기'가 운명을 가를 골든타임이라고 입을 모은다. 법무법인 쉴드 이진훈 변호사는 "'몰랐다'는 진술만으로 무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채용 경위, 구체적인 지시 내용, 대화 기록 등 본인이 업체에 속게 된 과정을 일관되게 소명하고, 가족 부양의 어려움을 입증할 자료를 충분히 제출하면 불구속 수사와 집행유예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A씨의 사건은 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법과 현실의 괴리, 그리고 어려운 이웃을 범죄로 내모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동시에 비추고 있다. 그의 재판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