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입증할 '사과 문자', 잘못 보내면 '협박' 독 된다
성추행 입증할 '사과 문자', 잘못 보내면 '협박' 독 된다
법률 전문가들 "'증거 있다' 언급은 금물, 사실관계만 담담히 적시해야"

회식 후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면, '증거' 언급은 협박이 될 수 있어 피해야 한다. / AI 생성 이미지
회식 후 노래방에서 50대 상사의 '나쁜 손'이 허리와 가슴을 넘어 옷속까지 파고들었다.
사건 직후 피해자는 떨리는 손으로 상황을 기록했지만,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문자를 보내야 할지, 보낸다면 어떻게 보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법률 전문가들은 초기 대응 문자가 혐의를 입증할 '약'이 될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협박'의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노래방에서 옷 속으로 들어온 상사의 손…"왜 그러세요"가 전부였다
사건은 회사 회식 술자리 후 이어진 노래방에서 발생했다. 50대 남성 상사는 여성 동료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피해자의 허리와 팔을 반복적으로 만지기 시작했다.
접촉은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 허리를 감싸고 가슴 부위를 만졌고, 급기야 옷 안으로 손까지 넣었다. 피해자는 같은 회사 직원이라는 사실과 당혹감에 "왜 그러세요"라며 몸을 피하는 것 외에 강하게 저항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귀가 직후 카카오톡 '나에게 보내기' 기능으로 곧바로 상황을 기록했고, "둘이 다시 노래방 가자"고 반복적으로 말하는 가해자의 음성이 담긴 영상까지 확보하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첫걸음을 뗐다.
"영상 있다"는 말은 절대 금물…변호사들이 말하는 '독이 되는 대응'
피해자의 가장 큰 고민은 '가해자에게 먼저 연락해 사과를 받아내야 할까'였다. 다수의 변호사들은 기록이 남는 문자 메시지가 증거 확보에 유리할 수 있다는 데 동의했지만, 그 방식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문자 내용에 '증거'나 '영상'을 언급하는 것은 최악의 수라고 경고했다.
법무법인(유한) 엘케이비평산 정진열 변호사는 "선제적으로 ‘증거/영상’을 언급하지 않는 편이 유리한 경우가 많습니다"라며 그 이유로 "가해자에게 방어 전략(부인/합리화/말맞추기)을 구체화할 단서를 주고, 불필요하게 '협박했다'는 식의 프레임을 만들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법률사무소 신임 박교현 변호사 역시 "가지고 있는 증거를 미리 언급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라고 단언하며, 섣부른 증거 공개가 오히려 가해자에게 대비할 시간을 줄 수 있음을 지적했다.
'약이 되는 문자'는 따로 있다…'사실'만 담담히 적시하라
그렇다면 어떻게 연락해야 '약'이 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기록이 남는 방식'으로 '감정을 배제하고', '사실만 건조하게' 전달하라고 조언했다.
법률사무소 조율 조가연 변호사는 "'○월 ○일 노래방에서 허리와 가슴을 만지고 옷 안으로 손을 넣은 행동에 대해 사과를 요구한다'는 취지로 구체적 사실관계를 적시하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상대가 이를 부인하지 않거나 변명하는 과정 자체가 유의미한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KB 김태안 변호사는 아예 구체적인 문자 예시를 제시했다. “당시 노래방에서 제가 원하지 않았는데 허리·가슴 부위 접촉과 옷 안으로 손을 넣는 행동이 있었습니다. 이 일에 대한 입장을 문자로만 알려주시고, 전화나 대면 연락은 하지 말아 주세요.” 이처럼 상대의 반응을 유도하되, 불필요한 대면이나 통화는 피하는 것이 핵심이다.
단순 실수 아닌 '강제추행'…법원의 판단 기준은?
가해자의 행위는 법적으로 어떻게 평가될까? 법률 전문가들은 '강제추행죄(형법 제298조)' 성립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분석한다.
법원은 추행을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 정의하며, 허리·가슴 등 성적으로 민감한 부위에 대한 반복적 접촉은 명백한 추행에 해당한다고 본다.
특히 피해자가 당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했더라도 죄의 성립에는 영향이 없다. 실제 법원은 "직장 선배이고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불편함을 내색하지 않은 것이지 피고인의 행위로 인하여 불쾌감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라며 피해자의 소극적 대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인천지방법원 2023. 11. 17. 선고 2022노4457 판결).
결국 핵심은 초기 대응이다. 법무법인 우선 조상우 변호사는 "형사 고소와 회사 신고, 민사 청구를 어떤 순서와 시점으로 엮을지가 결과를 좌우하는 사안"이라며, 증거를 바탕으로 법률 전문가와 함께 치밀한 전략을 세울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