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옮는 줄 알았다” 남친의 변명…성병 상해죄, '병원 기록' 없어도 유죄 가능할까?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안 옮는 줄 알았다” 남친의 변명…성병 상해죄, '병원 기록' 없어도 유죄 가능할까?

2025. 12. 05 12:54 작성
최회봉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caleb.c@lawtalknews.co.kr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전 연인에게 성병을 옮긴 혐의로 고소당한 남성. '진료 기록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감염 사실을 방치한 과실'로 해석될 수 있다는 법률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왔다.

전 연인에게 헤르페스를 옮겨 상해 혐의로 고소당한 남성이 "2년간 관련 진료 기록이 없다"고 주장했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남친의 '깨끗한' 병원기록, 성병 상해죄 재판의 역설


사랑을 믿었던 대가는 성병이었다. 전 연인에게 헤르페스를 옮긴 혐의로 고소당한 남성이 '최근 2년간 진료 기록이 없다'고 항변했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오히려 이 사실이 유죄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증상 없으면 안 옮는 줄"…엇갈린 증거, 누구에게 유리할까


여성 A씨는 전 남자친구 B씨를 상해 혐의로 고소했다. B씨와의 성관계 이후 헤르페스 2형 바이러스에 감염됐기 때문이다. A씨의 손에는 B씨가 "증상이 없을 땐 안 옮는 줄 알았다"고 말한 녹취 파일과 "성관계 일주일 후 초기 발현"이라는 의사 소견서가 들려 있었다. 모든 증거가 B씨를 가리키는 듯했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했다. 경찰이 확인한 B씨의 최근 2년간 의료기록에 헤르페스 관련 진료 내역이 전무했던 것이다. B씨의 기만을 입증하려던 증거가 거꾸로 그의 무고함을 뒷받침할 수도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 셈이다.


'

깨끗한' 진료기록의 역설…"오히려 과실 입증"


법률 전문가들은 B씨의 '깨끗한' 진료기록이 반드시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법무법인 베테랑의 김재헌 변호사는 "상대방의 비뇨기과 방문 기록이 없다고 해서 A씨의 주장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본인의 감염 여부를 스스로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관계를 가졌다는 점을 뒷받침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김경태 변호사 역시 "상대방의 의료기록 부재는 오히려 정기적인 검진을 하지 않았다는 점, 즉 본인의 감염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과실로 해석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헤르페스는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도 전염될 수 있고, 기본 성병(STD) 검사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수사기관도 인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알고 있었다" 자백 담긴 녹취, 유죄의 '스모킹 건' 될까


변호사들이 공통적으로 핵심 증거로 꼽은 것은 A씨가 확보한 B씨의 녹취 파일이다. "증상이 없으면 전염되지 않는 줄 알았다"는 B씨의 발언은, 그가 자신의 헤르페스 감염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강력한 정황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공명의 김준성 변호사는 "성병이 있음을 알면서도 알리지 않고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보여, 적어도 미필적 고의(dolus eventualis, 결과 발생을 예견하고 용인한 심리 상태)가 인정될 수 있을 것"이라며 상해죄 적용 가능성을 높게 봤다.


다만 로티피 법률사무소의 최광희 변호사는 신중한 의견을 냈다. 그는 "만약 A씨가 '(이전에는 괜찮았는데) 당신과 성관계 후 감염됐다'고 추궁하는 과정에서 나온 답변이라면, 상해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려워 불송치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A씨의 추궁에 B씨가 방어적으로 답변했을 가능성을 짚은 것이다.


법원의 높은 벽…'오직 그 성관계로' 입증해야


실제로 성병 전염을 이유로 한 상해죄 유죄 판결은 드물다. 법원은 가해자가 '성관계 당시' 성병을 보유했다는 점, 그리고 '오직 그 성관계로 인해' 피해자가 감염됐다는 점을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하도록 요구한다.


최근 서울서부지법은 헤르페스 양성 판정을 받은 지 7개월 이상 지난 피고인이 성관계를 한 사안에서 "피고인이 완치되었거나 전염되지 않을 것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있다"며 상해의 고의를 인정하지 않고 무죄를 선고했다(2023고정1194). B씨의 2년간 진료기록 부재가 A씨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다만 A씨의 경우 성관계 직후 '초기 발현' 진단을 받았다는 점에서 인과관계 입증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고, B씨의 '자백성' 녹취가 있다는 점에서 희망은 남아있다.


전문가들은 형사 고소와 별개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병행하는 '투 트랙' 전략을 조언한다. 형사재판보다 입증 책임이 덜한 민사재판에서는 치료비와 위자료를 인정받을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나만 모르는 일상 법률 상식, 매일 아침 배달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