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외침 무시한 성관계, '동의 철회'가 강간죄 시작이다
"싫어" 외침 무시한 성관계, '동의 철회'가 강간죄 시작이다
“콘돔 없으면 안 돼” 거절했지만...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호감으로 시작된 잠자리가 악몽으로 끝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엔 분명 합의했지만, 피임기구가 없다는 사실에 관계를 거부한 여성. 남성은 이 거절을 힘으로 짓밟았다.
법조계는 “관계 도중 동의를 철회했다면, 그 순간부터 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시작’이 아닌 ‘끝’까지 존중받아야 하는 동의의 중요성을 법원이 어떻게 판단하는지 집중 취재했다.
가해자의 한마디, “억지로 해서 미안해”...스스로 유죄를 인정한 걸까?
최근 한 온라인 법률 상담 플랫폼에 올라온 사연이다.
질문자 A씨는 술자리에서 만난 남성과 호감을 느껴 잠자리를 갖게 됐다. 처음에는 분명 동의했지만, 막상 관계를 시작하려니 피임기구가 없었다. A씨는 삽입을 거절하며 관계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남성은 A씨의 거부 의사를 무시하고 힘으로 억누르며 관계를 강행했다. A씨가 “싫다”고 외치며 여러 차례 벗어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끔찍한 시간이 흐른 뒤, 남성은 마치 선심 쓰듯 한마디를 던졌다. “억지로 하려 해서 미안하다.”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 A씨는 남성의 연락처를 차단했다. 하지만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홀로 응급실을 찾아 사후피임약을 처방받았다.
A씨는 “상대방의 사과 메시지나 녹음 같은 명확한 증거가 없는데, 고소가 가능할지 두렵다”며 법의 문을 두드렸다.
“시작은 동의했어도 끝은 아니다”...법원, ‘동의 철회’ 후 강행은 폭행
이성준 변호사(법무법인 에스엘)는 핵심 쟁점으로 ‘동의의 철회’를 꼽았다. 그는 “성관계 동의는 계약서가 아니다. 언제든 철회할 수 있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힘으로 관계를 지속했다면, 그 행위 자체가 피해자의 저항을 억압한 ‘폭행’이며 강간죄를 구성한다”고 쐐기를 박았다.
실제 법원 역시 같은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성관계 도중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표시했음에도 강행된 성관계에 대해 강간죄 유죄를 선고했다(2023노605 판결).
민경남 변호사(법률사무소 태희)는 “관계의 시작이 동의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은 범죄 성립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증거 없는 밀실 범죄? 천만에...사후피임약 처방전이 ‘움직일 수 없는 증거’
변호사들은 A씨가 증거 부족을 우려하지만, 이미 유력한 증거들을 확보하고 있다고 조언했다. 성범죄는 CCTV 등 객관적 증거가 없는 밀실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의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이 무엇보다 중요한 증거가 된다.
특히 가해자 스스로 “억지로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사실은 자신의 행위가 강제적이었음을 인정한 매우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다. 또한, 사건 직후 응급실을 방문해 사후피임약을 처방받은 기록은 성관계 사실과 더불어 원치 않는 관계였음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정황증거(사건의 사실관계를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
김준성 변호사(법무법인 공명)는 “성범죄 사건은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가 거의 대다수”라며 “피해자 진술 시 일관되고 구체적인 진술을 하는 것이 중요하며, 다른 정황증거들을 적극적으로 수집, 제출하여 피의자의 혐의를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이라도 당시 상황을 시간 순서에 따라 최대한 상세하게 기록해두는 것이 향후 법적 절차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조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