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괴롭힐 거야' 무죄 vs '합의 안 하면 감방' 유죄...협박죄 성립요건, 핵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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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괴롭힐 거야' 무죄 vs '합의 안 하면 감방' 유죄...협박죄 성립요건, 핵심은?

2025. 11. 24 18:00 작성
조연지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yj.jo@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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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느꼈어도 무죄?

협박죄 성립요건의 미묘한 경계선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사는 동안 니를 꼭 괴롭힌다."

"내가 사는 동안은 니를 꼭 밟는다"

"x같은 얘기하지 마라"


살면서 한 번쯤 들어봤거나, 홧김에 내뱉었을 법한 말들이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공포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발언들. 당연히 법적으로 처벌받아야 마땅한 '협박'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대중의 상식과 조금 달랐다.


피해자가 공포를 느꼈더라도, 가해자가 뱉은 말이 법리적으로 '협박'에 해당하지 않아 무죄가 선고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도대체 '범죄가 되는 협박'과 '단순한 화풀이'를 가르는 결정적 기준은 무엇일까.


최근 3년간의 대법원 판례를 통해 그 미묘한 경계선을 파헤쳤다.


"존중하며 갈구겠다" vs "합의금 안 주면 감방"… 엇갈린 운명

먼저 엇갈린 판결이 나온 두 가지 사건을 살펴보자.


사건 A(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2019고정218):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사는 동안 너를 꼭 감겠다(지켜보겠다)", "너를 존중하면서 갈구겠다"라고 말했다. 피해자는 이 말에 심리적 압박을 느껴 고소했다.


사건 B(창원지방법원 2022노2689): 또 다른 피고인은 합의를 거부하는 피해자들에게 "합의금을 주지 않으면 유치장이나 교도소에 들어가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상식적으로는 둘 다 명백한 협박처럼 들린다.


하지만 법원의 결론은 정반대였다.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은 A사건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창원지방법원은 B사건 피고인에게 유죄를 인정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 핵심은 '구체적 해악의 고지' 여부에 있었다.


법원이 말하는 '진짜 협박'의 제1조건: "구체성"

법률 분석의 관점에서 볼 때, 협박죄 성립의 가장 큰 장벽은 '해악의 구체성'이다.


대법원 판례(94도2187 등)에 따르면, 협박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상대방을 놀라게 하거나 기분 나쁘게 하는 정도를 넘어, "적어도 발생 가능한 것으로 생각될 수 있는 정도의 구체적인 해악"을 고지해야 한다.


앞선 사건 A(2019고정218)에서 재판부는 "도대체 어떤 법익에 어떤 해악을 가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갈군다'는 표현이 괴롭히겠다는 뜻은 내포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신체를 때리겠다는 것인지, 재산을 뺏겠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반면 유죄가 선고된 사건 B(2022노2689)는 달랐다.


법원은 이를 피해자의 신변(구속)이라는 구체적인 불이익을 조건으로 내걸었기 때문에 '구체적 해악의 고지'에 해당한다고 봤다. 즉, "무엇을, 어떻게, 어떤 조건으로" 해를 끼칠지 명확할수록 유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과거 "앞으로 수박이 없어지면 네 책임으로 한다"고 말한 사안에서도 법원이 "구체적으로 어떤 해를 가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죽여버린다"고 욕해도 무죄?… '일시적 분노'의 면죄부

독자들이 가장 의아해하는 부분은 바로 욕설 섞인 폭언이 무죄가 되는 경우다. 실제로 재판 현장에서는 "죽여버린다", "가만 안 둔다"는 말을 듣고도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는 '협박의 고의'라는 법리적 쟁점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2011도2412)는 행위자의 언동이 "단순한 감정적인 욕설 내지 일시적 분노의 표시에 불과"한 경우, 가해 의사가 없다고 보아 협박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싸우다가 홧김에 나온 말이나, 앞뒤 상황상 실제로 실행할 의도 없이 튀어나온 거친 언사는 '위협'이 아니라 '무례한 감정 표현'으로 본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주지방법원의 최근 판결(2022노1470)에서도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해악을 고지한 듯한 정황은 있었으나, "실제로 피고인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아갈 듯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무죄를 선고했다.


즉, 칼을 들고 서 있거나(특수협박), 집요하게 쫓아오는 등 '실현 가능성 있는 공포'를 조성하지 않은 채 말뿐인 욕설은 법의 심판대를 빠져나갈 구멍이 넓다.


당신의 '전송' 버튼이 범죄가 되는 순간

그렇다면 직접 만나서 하는 말이 아니라, 문자나 카카오톡은 어떨까. 비대면 상황이라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오히려 디지털 기록은 더욱 명확한 증거가 되어 발목을 잡는다.


최근 법원은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협박에 대해 '도달'의 의미를 폭넓게 해석하고 있다. 대법원(2018도14610)은 상대방이 실제로 메시지를 읽지 않았더라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 두기만 했다면 기수로 본다.


즉, 상대방이 무서워서 메시지를 열어보지 않았거나 바로 삭제했더라도, 공포심을 유발하는 문자가 상대방 휴대폰에 전송된 순간 범죄는 완성된다. 특히 최근에는 스토킹처벌법과 맞물려, 반복적인 메시지 전송은 단순 협박을 넘어 더 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겁만 주려 했는데"... 법적 심판의 경계

결국 협박죄의 유무죄를 가르는 건 피해자가 느낀 '주관적 공포'의 크기가 아니다. 법원은 ▲해악 내용의 구체성 ▲실현 가능성 ▲당시의 상황과 맥락을 냉정하게 따진다.


누군가에게 분노를 표출할 때, 그것이 단순한 감정 배설인지 상대의 삶을 옥죄는 구체적인 위협인지에 따라 '화난 사람'이 될 수도, '전과자'가 될 수도 있다.


말 한마디가 곧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법원은 판결문으로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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