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 없는데 '딱 너네'…아파트 카페 글로 직장 잃은 교사
실명 없는데 '딱 너네'…아파트 카페 글로 직장 잃은 교사
녹음파일 쥔 교사의 반격, '이름 없는 저격' 심판대 오르나?

아파트 입주민 카페의 익명 비방글로 한 교사가 퇴사했다. 실명 없이 외모와 담당 구역 묘사로 신원이 특정됐다. / AI 생성 이미지
아파트 입주민 카페에 올라온 익명의 비방글로 한 교사가 직장을 그만두는 일이 발생했다. 실명은 없었지만 '곱슬머리에 안경 쓴 키 큰 분' 등 외모와 담당 구역을 묘사한 댓글에 정체가 드러난 것이다.
허위 사실로 명예가 실추되고 경제적 피해까지 입었다고 호소하는 교사는 당시 상황이 담긴 녹음 파일을 들고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과연 '이름 없는 명예훼손'은 법의 심판대에 오를 수 있을까.
"곱슬머리에 안경"... 실명 없이도 가능한 '좌표 찍기'
사건은 2024년 8월, 한 아파트 입주민 온라인 카페에서 시작됐다. 한 교사에 대한 허위 비방글이 게시된 것이다. 글에는 교사가 입주민에게 “욕설·폭언·협박·신체적 위협을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실명은 거론되지 않았지만, 댓글에서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머리 곱슬에 안경 쓰고 키 큰 그분인가요?", "여기 블럭 담당이라고 들었다" 등 외모와 업무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이어졌고, 글 작성자 역시 "여기 블럭 이분이 담당한다고 했던 것 같아요"라고 답하며 사실상 한 사람을 지목했다.
당시 해당 아파트 단지 담당 교사는 사실상 혼자였기에, 주변 학부모들은 곧바로 글의 대상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결국 이 일로 정신적 고통을 겪던 교사는 직장을 그만두는 상황에 이르렀다.
"특정성 충분, 배상 가능"... 변호인단이 본 핵심 증거
법률 전문가들은 실명이 없더라도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영호 변호사는 "판례상 주위 사정을 종합해 특정인을 지목하는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으면 특정성이 인정됩니다."라고 설명했다.
즉, 주변 사람들이 누구에 대한 이야기인지 알 수 있다면 법적으로 피해자가 특정되었다고 본다는 의미다.
이 사건의 경우 외모 묘사, 담당 구역, 직업 등이 언급됐고 실제로 주변 사람들이 교사를 특정한 만큼 특정성 요건은 충분히 충족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교사가 보유한 녹음 파일은 허위성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로 꼽힌다. 고용준 변호사는 "녹음 파일이 게시글 내용과 상반되는 정황을 보여준다면, 허위성 입증에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조언했다.
이를 통해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는 물론, 게시글로 인해 직장을 그만둔 경제적 손실까지 청구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경제적 손실은 게시글과 퇴사 사이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입증해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형사 고소 기간 지났다?'…아직 남은 '법적 카드'
교사는 형사소송 기간이 지난 것 같아 민사소송을 고려했지만, 전문가들은 아직 형사 고소라는 카드가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최원석 변호사는 "모욕죄는 친고죄로서 모욕적 표현이 있었음을 안 날로부터 6개월이 지나면 고소 자체가 불가능합니다"라면서도 "반면 명예훼손죄는 반의사불벌죄로서 친고죄가 아니기 때문에 6개월의 고소기간 제한이 적용되지 않습니다"라고 명확히 구분했다.
허위사실을 퍼뜨린 명예훼손죄의 공소시효(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기간)는 7년으로 아직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최 변호사는 이어 "형사 고소를 병행해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자료를 민사에 활용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훨씬 유리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또한 불법행위를 안 날로부터 3년이므로 시간은 충분한 상황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현재 공개된 게시물에 대한 게시 중단 가처분 신청을 통해 추가 피해를 막고, 캡처본과 녹음 파일 등 확보된 증거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을 권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