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사 부도로 하자 보수 못 받던 입주민, '공동주택관리법'으로 극적 역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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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사 부도로 하자 보수 못 받던 입주민, '공동주택관리법'으로 극적 역전승

2025. 11. 27 11:21 작성
조연지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yj.jo@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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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비 떼였어도 하자 보수는 별개

시공사의 '면책 주장' 잠재운 항소심의 반전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꿈에 그리던 내 집 마련의 기쁨도 잠시, 입주 직후부터 발생한 누수와 균열로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


설상가상으로 건물을 지어 분양한 시행사는 세금을 체납하고 사실상 폐업 상태에 빠졌다. 입주민들은 건물을 직접 지은 시공사에게 책임을 물었지만, 시공사는 "우리도 시행사에게 공사대금 수십억 원을 못 받았다"며 배상을 거부했다.


법대로 하면 시공사의 말이 맞을까, 아니면 입주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정의일까. 최근 제주지방법원에서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 1심에서 패소했던 입주민들이 항소심에서 극적인 반전을 이끌어낸 것이다. 핵심은 변호인단이 찾아낸 '또 하나의 법'에 있었다.


부푼 꿈 안고 입주한 제주 빌라, 시행사 증발하고 남은 건 '하자' 뿐

제주시에 위치한 O, Q, R 주택 단지. 2018년경 준공된 이 건물들은 입주 직후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공용부분과 전유부분 곳곳에서 기능상, 미관상, 안전상 지장을 초래하는 하자가 발견된 것이다. 입주자협의회는 시공사인 M사에 보수를 요청했지만, M사는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분양 주체인 시행사들의 상황이었다. 시행사 H, I, J사는 국세 체납 등으로 사업자등록이 말소되거나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사실상 빈껍데기만 남은 상태였다. 건물의 소유권을 잠시 맡았던 신탁회사 K와 L 역시 계약 종료와 함께 분양자 지위를 시행사에 넘기며 법적 책임에서 벗어났다.


결국 입주민들이 기댈 곳은 건물을 직접 지은 시공사 M사뿐이었다. 하지만 M사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시행사로부터 받지 못한 공사대금이 Q단지에서만 약 89억 원에 달하는 등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M사는 "시행사에게 줄 손해배상금(하자보수비)과 시행사에게 받을 공사대금을 서로 퉁치겠다(상계)"고 주장했다.


"공사비 못 받아서 못 고쳐준다"... 1심 법원을 설득한 시공사의 논리

1심 재판부는 시공사 M사의 손을 들어줬다. 근거는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집합건물법)' 제9조 제3항이었다. 이 조항은 시공자가 이미 분양자(시행사)에게 손해배상을 한 경우에는 그 범위에서 구분소유자(입주민)에 대한 책임을 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시공사가 시행사에 대해 가지는 공사대금 채권으로 시행사의 하자보수 채권을 상계 처리한 것이 '실질적으로 배상을 한 것'과 같다고 봤다. 즉, 시공사 입장에서는 시행사에게 줄 돈을 안 받은 돈으로 깠으니, 입주민에게 또다시 돈을 줄 의무가 사라진다는 논리였다. 이로 인해 입주민들의 청구는 기각됐다.


입주민들 입장에서는 시행사의 부도라는 불똥이 자신들에게 튀어, 정당한 하자 보수조차 받지 못하는 억울한 상황이 된 것이다.


반전의 서막, 변호인단이 꺼내 든 '예비적 청구'라는 히든카드

항소심(2심)에 나선 입주민 측은 전략을 수정했다. 1심에서 패배 원인이었던 '집합건물법'만으로는 시공사의 방어막을 뚫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신 '공동주택관리법'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었다.


입주민 측은 "설령 집합건물법상 책임이 면제된다 하더라도,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른 독자적인 손해배상 책임은 여전히 살아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주위적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를 대비한 '예비적 청구'였다.


이에 대해 시공사 M사는 "이미 상계로 인해 모든 책임이 소멸했다"며 "공동주택관리법은 집합건물법을 보완하는 수준에 불과하므로 별도의 책임이 없다"고 맞섰다.


2심 재판부의 사이다 판결 "두 법은 별개... 시공사 책임 피할 수 없다"

제주지방법원 제1민사부는 입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집합건물법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과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은 독립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별개의 권리"라고 명확히 선언했다.


재판부는 특히 "집합건물법 제9조 제3항 단서에 따라 시공사의 담보책임이 면책된다고 하여, 곧바로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른 담보책임까지 면책된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즉, 시공사가 시행사와의 돈 문제(공사대금)를 해결했다 하더라도, 법이 정한 입주민에 대한 직접적인 하자 보수 의무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재판부는 "공동주택관리법상 책임은 입주민의 권리 보호를 위해 인정되는 중첩적인 권리"라고 강조하며, 시공사가 공사대금을 못 받았다는 이유(동시이행 항변권)로 입주민에 대한 책임을 거부할 수도 없다고 못 박았다.


시행사 부도나도 '살길'은 있다... 입주민 권리 보호의 이정표

법원은 다만 건물의 자연적인 노화 현상과 입주민들의 사용상 부주의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시공사의 책임을 전체 손해액의 60%로 제한했다. 이에 따라 시공사 M사는 시행사들과 공동하여 입주민들에게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하자보수금을 지급하게 됐다.


이번 판결은 시행사의 부실이나 시공사와의 채무 관계가 얽혀있더라도, 입주민들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별도의 안전장치가 존재함을 확인해 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시공사가 '미지급 공사비'를 방패 삼아 하자 보수를 거부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고, '공동주택관리법'을 통한 독자적인 구제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향후 유사 소송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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