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안았는데 피해자 아니라니…'셀프낙찰'의 덫
집 떠안았는데 피해자 아니라니…'셀프낙찰'의 덫
보증금 지키려다 손해만…정부와 법조계 엇갈린 '자력 회수' 해석

전세금을 지키려 살던 집을 낙찰받은 세입자가 '자력으로 보증금을 회수했다'는 이유로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을 거부당했다. / AI 생성 이미지
전세보증금을 지키려 살던 집을 직접 낙찰받은 세입자가 정부로부터 '자력으로 보증금을 회수했다'며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을 거부당했다.
현금 한 푼 돌려받지 못하고 오히려 손해까지 본 세입자는 행정소송을 앞두고 있지만, 법조계 내에서도 승소 가능성을 두고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린다.
피해 구제를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 법률 해석의 덫에 걸린 상황, 그 쟁점을 깊이 들여다봤다.
'혼동'은 '회수'가 아니다…엇갈린 법조계 시선
사건의 발단은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000만 원의 전세보증금을 내고 입주한 A씨는 집주인의 수많은 가압류 탓에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결국 A씨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직접 강제경매를 신청해 2024년 1월 자신의 보증금과 같은 6,000만 원에 집을 낙찰받았다. 하지만 이 선택은 '지원 대상 제외'라는 뜻밖의 결과로 돌아왔다.
국토교통부는 A씨가 특별법상 '보증금 전액을 자력으로 회수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A씨는 집을 낙찰가보다 싸게 팔아 손해를 봤고 경매 비용까지 떠안았지만, 행정심판에서도 패소했다.
국토부의 판단 근거는 '혼동(混同)'이라는 민법 원리다. 법무법인(유한) 엘케이비평산 정진열 변호사는 "국토교통부는 임차인이 주택을 낙찰받아 소유권을 취득하면서 임대차보증금 반환채권이 '혼동(민법 제507조)'으로 소멸했다는 형식적인 논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즉, 채권자(세입자)와 채무자(집주인)의 지위가 한 사람에게 합쳐지면서 채권이 법률상 사라졌으니, 보증금을 회수한 것과 같다는 논리다.
하지만 다수의 변호사들은 이러한 형식적 해석이 특별법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비판한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는 "질문자님은 보증금 6,000만 원을 현금으로 돌려받지 못했고, 오히려 강제경매 신청, 낙찰, 매도 과정에서 손실과 비용을 부담하였습니다. 이는 자력 회수라기보다 피해 회복을 위한 손해 감소 조치에 가깝습니다"라고 강조했다. 법률상 채권 소멸과 실제 현금을 돌려받는 경제적 회수는 다르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이동규 변호사 역시 "이를 자력 회수로 해석하여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특별법의 입법 목적에 반하는 과도한 행정처분으로 볼 수 있습니다"라며 실질적 피해 구제라는 법의 목적을 고려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승소 희박' 냉정한 현실…행정소송, 이길 수 있나?
다만, 행정소송으로 가더라도 승소를 장담하기는 어렵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로버스 법률사무소 신은정 변호사는 "행정소송의 승소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라고 단언하며 "법원과 행정청은 이를 부동산 소유권 취득을 통한 '자력 회수'로 해석하며, 이는 현행법상 타당한 법리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신 변호사는 "시세 하락이나 추가 비용 발생을 이유로 자력회수를 부정하고 피해자 결정을 취소해 준 판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라며 소송의 실익이 적다고 평가했다. 법원이 '혼동'이라는 형식적 법리를 엄격하게 적용할 가능성이 크고, 낙찰 후 발생한 손실은 소유권 취득 이후의 별개 문제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법원이 특별법의 취지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구제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가 섞인 전망도 나온다. 법무법인 헌정 송인혁 변호사는 "임차인이 경매로 소유권을 취득하여 보증금반환채무가 혼동으로 소멸하더라도 이를 실질적 손해 회복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한 판례가 있고(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2024. 12. 18. 선고 2024가단110304 판결) 행정소송을 통해 국토교통부의 처분이 재량권 일탈·남용에 해당함을 다투는 것은 충분한 실익이 있습니다"라고 반박했다.
실제 최근 하급심에서 유사한 사례에 대해 피해자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이 나오면서, A씨와 같은 피해자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