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던 '야동' 결제 내역, 나도 수사 대상? 처벌 기준은
잊고 있던 '야동' 결제 내역, 나도 수사 대상? 처벌 기준은
일반 음란물 단순 시청·결제는 처벌 대상 아냐
'아청물·불법 촬영물' 여부가 핵심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3년 전 야동 사이트에서 1회 결제한 기록이 떠올라 잠을 못 이룹니다. 저도 처벌 대상자가 될까요?"
불법 영상물 사이트 단속이 강화되면서 과거의 기억으로 불안에 떠는 이들이 늘고 있다.
과연 일반 성인물 단순 시청자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을까?
6인의 법률 전문가들은 처벌의 기준은 영상의 '종류'에 있다며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처벌 대상자에 올라올까요"… 잊었던 야동 결제 내역의 공포
"무슨 한심한 인간들이 그런 데 가입해서 야동을 보냐 하다가 갑자기 저도 예전에 어떤 사이트 회원 가입해서 포인트 사 가지고 야동을 구매했던 게 생각이 났습니다"
한 작성자가 온라인 법률 상담 게시판에 올린 글의 시작이다.
작성자는 약 3년 전, 이제는 아이디도, 사이트 주소도 기억나지 않는 곳에서 1회 포인트를 결제해 성인 영상을 구매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아청물)이 아니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지만, 작성자는 "처벌 대상자에 올라올까요"라며 깊은 불안감을 호소했다.
일부 음란물 사이트에 대한 수사 소식이 들려오면서, 과거의 사소한 이용 기록만으로도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공포가 번지고 있는 것이다.

변호사들 "일반 성인물 단순 시청, 처벌 규정 없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러한 불안감에 대해 '법적 근거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처벌의 전제 조건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변호사는 "우리 법상 성인이 개인적으로 일반 음란물을 시청하거나 소지하는 행위 자체는 형사처벌 대상이 아닙니다"라고 설명했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은 음란물을 '배포·판매·임대'하거나 '공공연하게 전시'한 자를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
단순 시청자는 해당되지 않는다.
법률사무소 새율의 윤준기 변호사 역시 "우리나라 법률상 음란물을 제작하거나 배포, 판매하는 행위는 처벌되지만, 성인이 개인적으로 시청하는 것은 처벌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즉, 합법적으로 제작된 일반 성인물을 돈을 내고 시청한 행위 자체는 범죄가 아니다.
진짜 처벌의 기준: '아청물'과 '불법 촬영물'을 보았는가
그렇다면 처벌의 칼날은 정확히 무엇을 겨누는 걸까.
법률사무소 이야기 한진수 변호사는 "처벌의 핵심 요건은 해당 영상물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아청물)'이거나 당사자의 동의 없이 촬영된 '불법 촬영물'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두 가지 범주의 영상물은 법이 엄격하게 금지하는 '절대악'으로 취급된다.
아동청소년성보호법과 성폭력처벌법은 해당 영상물을 제작·유포한 자뿐만 아니라 구매·소지·시청한 사람까지 강력하게 처벌한다.
법무법인 호평 배성환 변호사는 아청물 등의 경우 "단순한 시청·다운로드만으로도 ‘아동청소년성보호법’이나 ‘성폭력처벌법’에 따라 중형이 선고될 수 있습니다"라고 경고했다.
결국 내가 본 영상이 무엇이었는지가 처벌 여부를 가르는 결정적 기준이 되는 셈이다.
"수사 가능성 희박"… 만일 경찰 연락이 온다면?
설령 과거 이용했던 사이트가 불법 사이트로 밝혀지더라도, 3년 전 1회 단순 시청자를 수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법률사무소 제일로 배경민 변호사는 "3년이라는 시간은 통상적인 웹사이트의 접속 로그나 결제 대행사의 기록 보존 기한을 도과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단순 성인물 구매자를 특정하기 위해 수사력을 집중할 실익 또한 낮을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현실적인 수사 관행을 설명했다.
수사력은 주로 사이트 운영자나 상습 유포자, 아청물 구매자 등에게 집중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만약의 경우 수사기관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섣부른 진술을 경계하며 법률 전문가와의 상담을 우선 권했다.
법률사무소 이야기 한진수 변호사는 "현재로서는 기억나지 않는 아이디나 사이트 정보를 억지로 찾으려 애쓰시거나 미리 자책하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라고 조언했다.
불필요한 행동이 오히려 불안감만 키울 수 있다는 충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