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드디스크 속 '여죄' 폭탄, 법으로 막을 수 있다
내 하드디스크 속 '여죄' 폭탄, 법으로 막을 수 있다
압수된 하드디스크, 영장 없는 '별건 수사'는 위법

불법 영상 소지 혐의로 압수수색을 당했을 때, 영장에 없는 추가 범죄가 드러날까 우려하는 경우가 많다. / AI 생성 이미지
"2년 전 받은 영상 하나 때문에 경찰이 닥쳐 하드 디스크를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다른 불법 영상도 많습니다. 영장에 없는 죄까지 들통 날까 두렵습니다."
불법 촬영물 소지 혐의로 압수수색을 당한 한 남성의 절규다. '크라브넷' 영상 다운로드라는 단 하나의 혐의가 압수된 하드디스크 속 숨겨진 '여죄(餘罪)'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 수 있다는 공포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수사기관이 마음대로 하드디스크를 뒤질 수는 없으며, 판례와 법률에 근거한 대응으로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영상 하나'로 시작된 압수수색, 하드 속 '시한폭탄'
어느 날 오전, A씨의 집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2년 전 '크라브넷'이라는 사이트에서 특정 인물(윤xxx)의 불법 영상을 다운로드한 혐의였다.
경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고 A씨의 하드디스크를 가져갔다. 문제는 영장에 적시된 혐의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A씨의 하드디스크에는 해당 영상 외에도 다른 불법 촬영물들이 상당수 저장돼 있었다. 그는 디지털 포렌식 현장 참석을 포기한 채, 수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확대될 것을 우려하며 법률 상담의 문을 두드렸다.
법적 방패막 '영장주의', 추가 탐색은 위법
A씨의 우려처럼, 포렌식 과정에서 추가 혐의가 드러날 가능성은 존재한다. 하지만 수사기관이 이를 마음대로 수사할 수는 없다. 우리 법은 '영장주의 원칙'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적 분석에 따르면, 대법원은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에 있어 혐의사실과 관련된 전자정보 이외에 이와 무관한 전자정보를 탐색·복제·출력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위법한 압수·수색에 해당하므로 허용될 수 없습니다"(대법원 2015. 7. 16. 선고 2011모1839 결정)라고 판시했다.
즉, 경찰은 영장에 적힌 '윤xxx 영상' 관련 파일만 찾아봐야 하며, 다른 폴더나 파일을 뒤지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만약 수사관이 적법한 탐색 과정에서 다른 범죄 혐의를 '우연히' 발견했다면, 즉시 탐색을 멈추고 해당 혐의에 대한 별도의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에서 새로 발부받아야만 수사를 이어갈 수 있다.
내 권리는 내가…'포렌식 참여권'을 포기하지 마라
이러한 법적 원칙을 현실에서 지켜내기 위한 핵심 무기가 바로 '포렌식 과정 참여권'이다. 당초 참여를 포기했던 A씨의 선택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변호인과 함께 포렌식 과정에 참여하면, 수사관이 영장 범위를 넘어 다른 파일을 열어 보는지 감시하고 즉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만약 수사기관이 별도 영장 없이 위법하게 증거를 수집했다면, 이는 '위법수집증거'가 되어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
변형관 변호사는 "혐의를 인정하는 입장이더라도 증거관계에 대해서는 엄밀히 검토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위법한 수사 절차에 대해서는 법원에 취소나 변경을 요구하는 '준항고'를 제기해 다툴 수도 있다.
"기소유예 vs 실형"…골든타임은 바로 지금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극명하게 갈린다. 김준성 변호사는 "불법촬영물 소지죄의 경우 구공판 기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실형이 선고될 가능성도 있습니다"라고 경고했다. 구공판은 검사가 벌금형이 아닌 정식 재판을 청구하는 것으로, 그만큼 사안이 무겁다는 의미다.
반면, 옥민석 변호사는 "여죄만 막을 수 있다면 기소유예를 구해볼 수 있습니다"라며 희망적인 결과를 제시했다. 기소유예는 전과 기록이 남지 않는 최선의 결과다.
이 갈림길에서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수사 초기 대응이다. 안병찬 변호사는 "여죄 수사 가능성이 높기에 사건 초기부터 형사전문변호사의 도움받아 사건 진행할 필요 있습니다"라고 조언했으며, 박현식 변호사 역시 "압수수색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초기 대응도 중요한데, 초반에 자신이 생각없이 했던 대응이 위험요소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에 초기부터 체계적인 대처를 해야 합니다"라며 '골든타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섣부른 진술이나 포기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기 전에, 법적 권리를 방패 삼아 전문가와 함께 대응 전략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