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정신병원 입원 중 재산 처분…사망 후 알게 된 손녀, 유류분 청구 가능할까
할아버지가 정신병원 입원 중 재산 처분…사망 후 알게 된 손녀, 유류분 청구 가능할까
변호사들 "매매 당시 의사능력·대가 지급 여부가 관건"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최근 할아버지의 사망 이후, 손녀 A씨는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했다. 할머니가 남긴 집을 할아버지가 정신병원 입원 중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린 것이다. A씨는 아버지의 대습상속인(상속권을 이어받은 사람)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을지 도움을 구했다.
할머니의 유산, 할아버지의 노후자금이 되다
사건의 시작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3월 A씨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5개월 뒤인 8월 할머니마저 눈을 감았다. 할머니 명의로 된 집은 법적 상속인인 할아버지, 고모, 그리고 사망한 아들을 대신한 A씨(손녀)와 A씨의 어머니(며느리)에게 공동으로 상속됐다.
하지만 가족들은 연로하신 할아버지의 노후를 위해 자신들의 상속 지분을 모두 할아버지에게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할아버지가 안정적인 노후를 보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이로써 집은 온전히 할아버지의 단독 명의가 됐다.
평온할 것 같던 가족의 삶은 2024년, 할아버지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이 집을 다른 직계비속과 상의 한마디 없이 제3자에게 매각하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A씨는 할아버지가 사망한 최근에서야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됐다. 할아버지의 상속 재산을 정리하던 중, 집이 이미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된 것을 확인한 것이다.
진짜 매매였나, 무효인 계약이었나
A씨의 사연을 접한 변호사들은 유류분 반환 청구에 앞서 따져봐야 할 핵심 쟁점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바로 할아버지가 집을 팔 당시의 법적 효력이다.
정찬 법무법인 반향 변호사는 "할아버지의 매매 당시 정신적 판단 능력이 없었다면 매매계약 자체가 무효가 될 가능성이 있다"며 "유류분 반환 청구 이전에 매매 무효 또는 취소 소송으로 접근하는 것이 우선 검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선 할아버지의 병원 진단서, 입퇴원 기록, 간호 기록, 투약 내역 등 당시 의사능력이 없었음을 보여줄 객관적 자료 확보가 필수적이다.
서명기 서울종합법무법인 변호사는 "병원 진단서, 간호기록 등으로 의사능력 부재를 입증할 수 있다면 무효 주장의 근거가 충분히 된다"고 조언했다.
유류분 청구, 매매의 실질을 파고들어라
만약 매매계약 자체를 무효로 만들기 어렵다면, 다음 단계는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이다. 유류분이란 법으로 정해진 최소한의 상속 지분을 말한다. A씨는 아버지를 대신해 상속받는 '대습상속인'으로서 유류분을 주장할 권리가 있다.
변호사들은 이 소송의 성패가 할아버지의 매매가 정상적인 거래였는지에 달렸다고 분석한다.
한병철 법무법인대한중앙 변호사는 "매매 당시 실질적인 금전거래가 존재하고 대가가 적정하게 지급되었다면 반환청구는 인정되지 않는다"며 "거래의 실질이 증여인지 유상매매인지가 핵심 판단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시세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에 팔았거나, 매매대금이 할아버지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다른 상속인(고모 등)에게 흘러 들어갔다면 이는 매매를 가장한 증여로 볼 수 있다.
이진훈 법무법인 쉴드 변호사는 "사실상 증여에 해당한다면 유류분 반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조선규 법무법인 유안 변호사는 "금융감독원 '상속인 금융거래 조회 서비스'를 통해 조부님의 계좌 내역을 확보해 매매대금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간과의 싸움, 증거 확보가 먼저
A씨가 권리를 되찾기 위한 길은 두 갈래다. 할아버지의 의사능력 부재를 입증해 '매매계약 무효 소송'을 제기하거나, 매매의 실질이 증여임을 밝혀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다. 두 소송은 병행하여 검토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유류분 반환 청구권은 상속이 시작되고 자신의 권리가 침해된 사실을 안 날로부터 1년, 상속이 시작된 날로부터 10년 안에 행사해야 하는 소멸시효가 있다. A씨처럼 최근에야 매매 사실을 알았다면 시효 문제는 없지만,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
결국 A씨의 싸움은 증거와의 싸움이 될 전망이다. 할아버지의 의료기록, 매매계약서, 부동산 등기부등본, 매매대금 입출금 내역 등 객관적 자료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소송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