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진 한 장 없어 1억 2천 날렸다"... 군사지역 땅 주인의 기막힌 사연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단독] "사진 한 장 없어 1억 2천 날렸다"... 군사지역 땅 주인의 기막힌 사연

2025. 12. 05 15:15 작성
조연지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yj.jo@lawtalknews.co.kr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하천 구역 편입되며 국유화

50년 전 하천 편입 토지, 상속인이 소송 끝에 승소했지만 '과거 농사 증거' 부족으로 청구액의 37%만 보상받게 됐다.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50여 년 전 정부의 하천 공사로 인해 강제로 물길 속에 잠겨버린 땅이 있다. 평생 농사를 짓던 아버지는 보상금 한 푼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았고, 반세기가 지나서야 아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며 아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정작 아들이 받게 된 돈은 당초 기대했던 금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사라진 '그날의 증거'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사건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B씨는 구 농지개혁법에 따라 경기도 파주시 소재의 답(논) 888평을 분배받았다. B씨는 해당 토지에 대한 상환을 1967년 10월 1일 완료하며 온전한 소유권을 취득했다. 당시 이 땅은 B씨 가족의 생계 터전이었다.


비극은 1969년경 시작됐다. 당시 하천관리청이던 건설부는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임진강을 따라 거대한 제방을 쌓기 시작했다. 1971년 9월 제방이 완공되면서 B씨의 땅은 제방 안쪽이 아닌, 물이 흐르는 강 쪽인 '제외지(둔치)'가 되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1971년 시행된 구 하천법에 따라 이 땅은 별도의 절차 없이 자동으로 하천 구역으로 편입되어 국유화됐다.


하루아침에 땅을 빼앗겼지만, 당시 B씨는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2003년 B씨가 사망한 뒤, 그 아들인 원고 A씨가 협의분할을 통해 이 토지에 대한 손실보상청구권을 단독으로 상속받았다. A씨는 "아버지가 보상 없이 소유권을 상실했으므로, 국가는 '하천편입토지보상법'에 따라 현재의 가치로 환산한 손실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경기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농사짓던 땅이다" vs "증거가 없다"... 사라진 50년의 기록

재판의 핵심 쟁점은 국가의 보상 의무 여부가 아니라, '땅의 가치를 얼마로 쳐줄 것인가'였다. 수원지방법원 제2행정부(재판장 김태환)는 우선 "해당 토지는 1969~1971년경 제방 축조로 제외지가 되었고, 하천 구역에 편입되어 국유화된 사실이 인정된다"며 피고인 경기도가 원고에게 손실을 보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하천편입토지보상법 제2조를 유추 적용해 구제해야 한다는 대법원 법리에 따른 것이다.


문제는 보상금 산정 기준이었다. 원고 A씨는 "편입 당시 이 땅은 아버지가 농사를 짓던 논(농경지)이었다"며 농경지 기준으로 감정평가한 약 1억 9,6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주장했다. 반면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편입 당시의 지목 및 토지이용상황을 알 수 없을 때는 '현재의 토지이용상황'을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며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법원은 A씨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을까. 가장 큰 이유는 해당 지역이 '군사 접경지역'이라는 특수성 때문이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토지는 군사 접경지역으로서 하천 구역 편입 시기인 1969~1971년경의 이용 상황을 알 수 있는 항공사진이나 위성사진 등 직접적인 자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A씨는 "1967년에 농지 상환을 완료했으니 그때까지 농사를 지은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상환 완료는 대가를 다 지급했다는 뜻일 뿐, 1971년 편입 당시까지 실제로 농경지로 사용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50년 전 동네 주민들의 확인서 역시 당시 그들의 나이가 10세 전후였던 점을 들어 신빙성이 낮다고 봤다.


군사지역이라 사진 한 장 없어... 결국 '현재 상태'인 둔치로 평가

결국 재판부는 법원 감정인의 판단에 따라 이 땅의 성격을 농경지가 아닌, 현재의 이용 상황인 '둔치'로 규정했다. 일반인의 통행이 통제된 군사 접경지역 내의 둔치로 평가된 것이다. 최근 위성사진 분석 결과 일부 고랑 흔적이 발견되긴 했으나, 이는 2013년 이후의 흔적일 뿐 1971년 당시의 증거로는 부족했다.


이에 따라 보상금은 대폭 줄어들었다. 농경지로 평가받았을 경우 3.3㎡(평)당 가격이 훨씬 높게 책정될 수 있었으나, 둔치로 평가되면서 감정가는 현저히 낮아졌다.


재판부는 "피고는 원고에게 73,106,400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A씨가 청구한 금액의 약 37%에 불과한 수준이다. 법원은 50년 전 국가의 강제 수용에 대한 배상 책임은 인정했지만, 입증 자료의 부재라는 현실적인 벽 앞에서는 엄격한 증명 책임을 요구한 셈이다.


이번 판결은 오랜 시간이 흐른 과거사 사건에서 '당시의 현황'을 입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군사지역 등 특수 상황에서 기록의 부재가 개인에게 어떤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를 시사한다

나만 모르는 일상 법률 상식, 매일 아침 배달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