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 700만원 못 낸다” 가해자의 정식재판…성추행 피해자는 법정에서 뭘 해야 하나
“벌금 700만원 못 낸다” 가해자의 정식재판…성추행 피해자는 법정에서 뭘 해야 하나
법원 출석부터 의견서 제출까지…'깜깜이 재판'에서 피해자가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법, 전문가 5인에게 물었다.

성추행 가해자가 벌금형 약식명령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하자, 피해자는 재판 절차에서 소외되어 불안에 떨고 있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전 직장 대표를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로 고소한 A씨는 1년 만에 가해자에 대한 처벌 소식을 들었다. 경찰의 무혐의 결정을 이의신청으로 뒤집고, 검찰이 벌금 700만 원의 약식기소(검사가 서면 심리만으로 벌금형을 내려달라고 청구하는 절차)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해자인 대표가 법원의 약식명령에 불복하고 정식재판을 청구하면서 싸움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첫 공판은 이미 끝났고, 두 번째 공판 기일은 다가오는데 피해자 A씨는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한 채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졌다.
끝나지 않은 싸움, “재판에 가야 하나요?”
A씨의 질문에는 재판 절차에서 소외된 피해자의 답답함과 불안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검사님에게서 아무 연락이 없는데, 그냥 두 번째 공판을 기다려야 하나요?”, “비슷한 내용의 탄원서를 또 내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재판에 직접 참관하는 게 좋을까요?”
가해자는 변호인을 선임해 적극적으로 방어하는데, 정작 피해자는 재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차 알기 어려운 ‘깜깜이 재판’에 놓인 셈이다.
법률사무소 가온길의 백지은 변호사는 “안타깝게도 공판절차에서 피해자는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검사가 특별히 챙겨주시지 않는 이상 연락을 받지는 못할 것 같다”며 정보 비대칭의 현실을 짚었다.
“
참관하라, 당신의 존재가 무기다”
전문가들은 가능하다면 공판에 참관하라고 입을 모았다. 법무법인 시우의 김연수 변호사는 “직접 보면 재판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니 답답함이 조금은 해소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단순히 답답함을 푸는 것을 넘어, 피해자의 참석은 재판에 미묘하지만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김경태 법률사무소의 김경태 변호사는 “피해자가 법정에 출석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재판부에 사건의 중요성을 각인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선승의 안영림 변호사 역시 “재판을 보지 않고서는 피고인이 범행을 자백하는지, 부인하는지 알 수 없고 증인 신청 여부도 알 수 없다”며 방청의 실질적 이점을 설명했다.
‘탄원서’보다 강력한 한 방, ‘변호인 의견서’
가해자의 엄벌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탄원서를 반복해서 내는 것은 어떨까.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새로운 내용이 없다면 실익이 크지 않다고 답했다. 이미 제출된 탄원서는 재판 기록에 남아 판사가 언제든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법무법인대한중앙의 조기현 변호사는 더 강력한 무기를 제안했다. 바로 ‘변호인 의견서’다.
조 변호사는 “상대방은 무죄를 다투는 상황이므로, 상대방의 행위가 법리적으로 추행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변호인 의견서를 추가로 제출하시길 권한다”고 말했다.
감정에 호소하는 탄원서보다, 피고인의 주장을 법리적으로 반박하는 전문가의 의견서가 무죄를 주장하는 가해자에 맞서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의미다.
자신의 권리를 알라
‘깜깜이 재판’의 망망대해에서 A씨가 붙잡아야 할 ‘지도’는 결국 자신의 권리를 아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조언을 종합하면, 피해자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명확하다.
▲재판 기일을 확인해 직접 법정에 출석하고, ▲피고인의 주장을 법리적으로 반박하는 ‘변호인 의견서’를 제출하며, ▲필요 시 피해자 국선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재판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형사재판의 결과와 무관하게, 정신적 피해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라는 또 다른 길도 열려 있다. 외로운 싸움에서 더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이제 피해자 스스로가 자신의 가장 강력한 변호인이 되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