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말라”던 집주인 말만 믿었는데…내 전세금 1억 2천, 경매로 날릴 판
“걱정 말라”던 집주인 말만 믿었는데…내 전세금 1억 2천, 경매로 날릴 판
전세금 1억 2천, 경매 넘어간 집에 사는 세입자의 생존법…변호사 5인 '이것부터 하라' 만장일치

전세집이 경매에 넘어가 보증금을 잃을 위기인 세입자는 즉시 법원에 '배당요구'를 신청해야 한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집주인은 '곧 해결된다'는데…어느 날 우리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
2022년 10월, 부푼 꿈을 안고 보금자리를 마련한 세입자 C씨. 2년의 계약 기간이 끝나고 집주인과 별다른 이야기 없이 계약은 자연스럽게 연장(묵시적 갱신)됐다.
평온하던 일상은 2025년 8월, 날벼락 같은 소식으로 산산조각 났다. 같은 건물에 살던 다른 세입자가 신청한 강제경매가 시작된 것이다. 집주인은 "금방 해결하겠다"며 C씨를 안심시켰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2025년 10월, 이번엔 은행까지 임의경매를 신청하며 C씨의 집은 두 개의 경매 사건이 병합된 채 절차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보증금 1억 2천만 원, 그중 9,600만 원은 대출이다. C씨는 이제 어떻게 자신의 소중한 자산을 지켜야 할까. 법률 전문가들은 C씨의 절박한 질문에 명쾌한 해답을 내놓았다.
"일단 법원에 달려가세요"…생존의 첫걸음, 배당요구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시급하게 강조한 조치는 '배당요구' 신청이다. 배당요구란, 경매를 통해 집이 팔렸을 때 그 매각대금에서 내 보증금을 나눠달라고 법원에 공식적으로 권리를 신고하는 절차다.
법무법인 감우의 정의권 변호사는 "배당요구신청서는 반드시 제출하여야 한다"고 단언했다. 법률사무소 온유의 이철규 변호사 역시 "무조건 배당요구 신청 하셔야 한다. 안 하면 배당 못 받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법원은 경매 절차 중 '배당요구 종기'라는 마감일을 정하는데, 이 날짜를 단 하루라도 놓치면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 처할 수 있다. C씨처럼 확정일자를 받아둔 세입자는 우선변제권(후순위 권리자보다 먼저 돈을 받을 권리)이 있지만, 이 권리 역시 배당요구를 해야만 효력이 발생한다.
이사 가야 한다면? '임차권 등기'라는 안전장치
C씨는 올해 말 이사 계획이 있다. 당장 집을 비워야 할까, 아니면 보증금을 돌려받을 때까지 버텨야 할까.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임차권 등기명령'이다. 이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이사를 가더라도 기존의 대항력(집주인이 바뀌어도 계약기간 동안 살고 보증금을 돌려받을 권리)과 우선변제권을 그대로 유지시켜주는 제도다.
법률사무소 명중의 임승빈 변호사는 임차권 등기의 효과를 세 가지로 요약했다. 그는 "① 이사 후에도 법적 보호를 받고, ② 보증금에 대해 연 12%의 지연손해금을 받을 수 있으며, ③ 보증금을 빨리 반환하도록 임대인을 압박하는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즉, 이사 계획이 있다면 임차권 등기를 신청해 권리를 '박제'해두고 자유롭게 거처를 옮길 수 있는 셈이다.
법무법인 인화의 김명수 변호사도 "이사를 예정하고 있는 경우라면, 더욱 더 (배당요구와 함께) 임차권등기명령 신청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피 말리는 순서 싸움…내 보증금, 과연 몇 번째일까
경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당 순위'다. 누가 먼저 돈을 받아 가느냐에 따라 내 보증금의 운명이 결정된다.
C씨의 건물에는 은행의 근저당권(대출을 해주며 집을 담보로 잡은 권리)이 설정돼 있고, C씨보다 늦게 임차권 등기를 마친 다른 세입자들도 있다. 순서는 어떻게 될까.
변호사들은 '임차권 등기 설정일'이 아니라, '확정일자와 전입신고일 중 늦은 날짜'가 기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의권 변호사는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을 마친 날의 다음 날과 확정일자 발급일 중 더 늦은 날이 우선변제권 순위가 된다"고 설명했다.
C씨는 2022년 10월부터 거주했으므로, 2024년 이후에 문제를 겪은 다른 세입자들보다는 순위가 앞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은행의 근저당 설정일이 C씨의 확정일자보다 빠르다면, 은행이 먼저 돈을 받아 가게 된다.
돈 못 받아도 쫓겨나나? '대항력'이라는 최후의 방패
만약 경매가 끝나고 집이 다른 사람에게 낙찰됐는데, C씨가 배당금을 전액 돌려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될까. 그대로 집을 비워줘야 할까.
여기서 세입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대항력'이 힘을 발휘한다. C씨가 만약 은행의 근저당권보다 먼저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갖춘 '선순위 임차인'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철규 변호사는 "보증금을 다 못 돌려받아도 전액 다 받을 때까지 퇴거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대법원 판례 역시 대항력 있는 임차인이 경매에서 보증금 전액을 배당받지 못했다면, 집을 산 새 주인(낙찰자)에게 나머지 보증금을 받을 때까지 집을 비워주지 않아도 된다고 보고 있다. 즉, 새 주인이 C씨의 남은 보증금을 대신 갚아야 할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이다.
다만, C씨가 은행보다 후순위라면 배당받은 만큼만 받고 집을 비워줘야 할 수도 있어, 정확한 권리관계 분석이 필수적이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골든타임'을 놓치지 마라
상황은 복잡하지만 C씨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법률사무소 유(唯)의 박성현 변호사는 "현재 상황에서는 경매 절차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우선, 경매 배당요구 신청을 반드시 접수해야 하며, 신청 마감일을 확인하고 기한 내에 신청해야 보증금 일부라도 배당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의 조언을 종합하면 C씨의 행동 계획은 다음과 같다.
첫째, 즉시 법원 경매정보를 확인해 '배당요구 종기일'을 파악하고 그 전에 반드시 배당요구를 신청해야 한다.
둘째, 집주인에게 내용증명을 보내 계약 해지 의사를 통보한다.
셋째, 이사 계획이 있다면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해 권리를 확보한다.
넷째, 전세자금대출을 받은 은행에 연락해 상황을 알리고 대출 연장 문제를 협의해야 한다.
'곧 해결된다'는 집주인의 말만 믿고 기다리기엔 C씨의 1억 2천만 원은 너무나 큰돈이다.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한 신속하고 적극적인 법적 대응이 절실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