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사망, 상속인 전원 포기…벼랑 끝 전세금, '셀프 경매'로 되찾을까?
집주인 사망, 상속인 전원 포기…벼랑 끝 전세금, '셀프 경매'로 되찾을까?
소송은 실익 없어 취하, 전세권 경매가 유일한 해법… '상속재산관리인' 선임이 핵심 관건

집주인 사망 후 상속인 전원이 상속을 포기해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 세입자의 법적 대응 방안은 무엇일까?/ AI 생성 이미지
전세 살던 집주인이 갑자기 사망하고, 상속인들은 모두 상속을 포기했다. 보증금을 돌려줄 사람이 사라진 황당한 상황.
법조계는 '전세권'에 기한 '셀프 경매'를 유일한 해법으로 제시하지만, 경매를 위해선 '상속재산관리인'이라는 생소한 절차를 먼저 밟아야 한다. 변호사 16명의 조언을 통해 벼랑 끝 세입자의 생존 전략을 분석했다.
'유령 소송'의 막, 비용 아끼려면 '변론 전' 취하가 정답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던 세입자 A씨. 어느 날부터 집주인과 연락이 끊겼다. 등기부등본을 확인하니 이미 신용보증재단의 가압류까지 설정된 상태였다.
내용증명을 세 차례나 보냈지만 '수취인 불명'으로 모두 반송됐다. 수소문 끝에 A씨는 집주인이 2024년 12월에 이미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을 찾기 위해 A씨는 2025년 12월, 상속인을 특정하고자 전세보증금반환청구소송을 냈다. 소송을 통해 알아낸 집주인의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들은 그러나, 2026년 4월 법원에 "상속을 포기했으므로 본건을 기각해달라"는 한 줄짜리 답변서를 제출했다.
A씨의 소송은 돈을 받아낼 상대방 자체가 사라진 '유령 소송'이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법조계는 이 소송의 실익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법원이 변론기일을 지정했지만, 이는 상속포기 사실을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하다. 오히려 소송을 빨리 끝내야 비용 손실을 줄일 수 있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이동규 변호사는 "첫 변론기일 이전 취하면 통상 절반 환급이 가능하지만, 변론기일이 진행된 이후 취하하면 환급이 거의 안 됩니다. 그래서 이번 기일 전에 취하하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는 가장 낫습니다"라고 조언했다. 돈을 받을 상대가 없는 소송을 붙들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유일한 희망 '전세권', 판결 없이도 '셀프 경매' 가능
소송의 문이 닫힌 A씨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계약 당시 등기해 둔 '전세권'이다. 전세권은 집주인이 바뀌어도 효력을 주장할 수 있고,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별도의 재판 판결 없이도 곧바로 집을 경매에 넘길 수 있는 강력한 물권(物權)이다. A씨는 신용보증재단의 가압류보다 먼저 전세권 설정등기를 마쳐 경매 시 1순위로 보증금을 받을 권리도 확보했다.
이에 다수의 변호사들은 A씨가 직접 경매에 참여해 집을 낙찰받는 '셀프 낙찰'을 가장 현실적인 해법으로 제시했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는 "상속 전원이 상속포기를 한 경우 보증금 반환소송으로 실익은 사실상 없고, 전세권을 통한 임의경매 진행이 가장 현실적인 회수 방법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전략은 A씨가 경매에서 집을 낙찰받은 뒤, 낙찰대금에서 자신의 전세보증금을 제외한 차액만 법원에 내고 소유권을 취득하는 방식이다.
법무법인 인화 김명수 변호사 역시 "전세권에 기하여 임의경매를 신청하시고 일정회수로 유찰된 후에 셀프낙찰을 받으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셀프낙찰에 따라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게 되면 가압류등기는 당연히 말소될 것입니다"라며 이 방법의 유효성을 뒷받침했다.
경매로 가는 길목의 '숨은 암초', 상속재산관리인
다만 경매로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다. 상속인이 모두 사라진 '법적 공백' 상태에서는 경매를 진행할 상대방이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법원에 '상속재산관리인'을 선임해 달라고 요청해, 사망한 집주인을 대신할 법적 주체를 만들어야만 경매 절차를 개시할 수 있다. 이 절차의 중요성에 대해 변호사들은 한 목소리를 낸다.
HB & Partners 이충호 변호사는 "현재 상황에서 상속포기서가 제출되었다면 실질적인 보증금 회수 상대방이 부재한 상태이므로, 법원에 상속재산관리인 선임을 신청하여 경매 절차를 진행하는 방향을 고려해야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즉, '셀프 경매'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선 '상속재산관리인 선임'이라는 숨겨진 암초를 반드시 넘어야 하는 셈이다.
추가 안전장치 '임차권등기',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A씨의 또 다른 고민은 '임차권등기명령'을 추가로 신청해야 하는지 여부다. 임차권등기명령은 세입자가 이사를 가더라도 보증금을 우선해서 받을 권리(대항력 및 우선변제권)를 유지해 주는 제도다. 이 쟁점을 두고는 변호사들의 의견이 갈렸다.
다수는 이미 강력한 전세권이 있어 필수는 아니라고 본다. 법무법인 테헤란 황인 변호사는 "이미 전세권이 등기되어 있다면 대항력·우선변제권이 확보되어 있어 필수는 아닙니다. 다만 이사 계획이 있다면 안전장치로 검토는 가능합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전세권만으로도 권리 보호가 충분하다는 시각이다.
반면 만약에 대비한 '이중 안전장치'로 신청해 두는 것이 유리하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제로변호사 홍윤석 변호사는 "전세권은 건물 부분에만 설정되어 추후 대지 매각대금에서는 배당받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택임대차보호법상 권리를 유지해 주는 임차권 등기를 병행하시면 전체 매각대금에서 보증금을 방어하는 데 훨씬 유리할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조언했다. 권리를 더욱 완벽하게 지키기 위한 추가 조치를 권고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