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130만원 상납, 5년 뒤 5억 비자금 공범으로…말단 직원의 절규
월급 130만원 상납, 5년 뒤 5억 비자금 공범으로…말단 직원의 절규
상사 지시에 급여 일부 반납, 퇴사 후 '횡령 방조' 혐의 직면…법조계 "고의성 입증이 관건, 주범은 특경법 처벌"

회사 말단 직원 A씨가 월급날마다 자기 통장으로 130만원씩을 더 받아 상사에게 전해주었다가 '비자금 조성 공범'이 되었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월급날마다 130만원씩 상사에게 건넨 5년, 퇴사하고 보니 저는 5억대 비자금 사건의 '공범'이 되어 있었습니다.
A씨에게 월급날은 기쁨이 아닌 공포의 시작이었다. 5년간 매달 월급 130만원을 현금으로 뽑아 상사에게 건넸다. 그렇게 그의 손을 떠난 돈만 8천만원.
퇴사 후, 그 돈이 회사의 5억대 비자금이었고 자신은 범죄의 '심부름꾼'이었다는 진실과 마주했다.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이제 그는 '횡령 공범'이라는 족쇄를 찰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고 있다.
'가짜 월급' 130만원, 5년간 8천만원…나는 비자금 심부름꾼이었다
사건의 구조는 치밀했다. 회사는 A씨의 실제 연봉에 130만원을 더 얹어 급여를 지급한 뒤, 그 130만원을 고스란히 현금으로 되돌려받았다. 범행을 숨기기 위해 회사는 실제 연봉 계약서와 130만원이 부풀려진 '가짜 계약서'를 이중으로 작성했다. A씨는 "윗선에서 시키는 일이라 용도나 이유도 묻지 못하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런 비정상적인 '월급 상납'에 동원된 직원은 A씨를 포함해 서너 명 더 있었다. 이들이 10여 년에 걸쳐 조성한 비자금은 무려 5억 원. 회사는 이 돈을 불투명한 접대비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말단 직원들의 월급 일부가 회사의 검은 돈으로 둔갑한 순간이었다.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횡령 방조범' 족쇄 채워지나
퇴사 후 모든 사실을 알게 된 A씨의 가장 큰 두려움은 형사 처벌 가능성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그의 행위가 '업무상 횡령 방조' 혐의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범죄를 직접 계획하고 실행한 '정범'은 아니지만, 범행을 용이하게 도운 '방조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법조계는 A씨가 처벌받더라도 수위는 높지 않을 것으로 본다. 조기현 변호사(법무법인대한중앙)는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따른 것이므로 여러모로 정상이 참작될 수 있다"며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가능성을 언급했다. 개인적 이득을 취하지 않은 점이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운명을 가를 열쇠는 '고의성'이다. 비자금 조성이라는 불법을 명확히 알면서도 가담했는지가 쟁점이다. 백창협 변호사(법무법인 오른)는 "정상적이지 않은 급여 지급과 반납 과정 때문에 '몰랐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며, 범죄 가능성을 알면서도 용인하는 심리 상태인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가능성을 지적했다.
윗선은 '특경법' 철퇴, 나는 '방조범'…엇갈린 운명
반면, 5억 비자금 조성을 주도한 회사 대표와 재무 임원은 무거운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횡령액이 5억 원을 넘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 적용 대상이기 때문이다. 특경법상 횡령액이 5억 원 이상 50억 원 미만이면 3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서아람 변호사(변호사 서아람 법률사무소)는 "주범인 대표이사 등은 업무상 횡령, 배임, 조세포탈 등 여러 혐의가 적용돼 실형 선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전망했다. 말단 직원은 '방조범'의 멍에를 걱정하는 사이, 범죄를 설계한 윗선은 '특경법'의 철퇴를 마주하게 된 셈이다.
자수냐, 침묵이냐…'골든타임' 놓치면 공범 낙인
전문가들은 A씨와 같은 처지라면 수사 초기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자신의 역할이 상명하복 문화 속 '단순 실행자'에 불과했고, 불법성에 대한 인식이 미약했음을 적극 소명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수사 전 자수를 통해 내부 고발자로서 선처를 구하는 것도 전략이 될 수 있다.
조진희 변호사(법률사무소 라운)는 "실질적으로 얻은 이익이 없고 수사에 협조하면 선처받을 수 있다"면서도 "주범의 '같이 책임지자'는 식의 꼬임에 절대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A씨의 사례는 조직적 범죄 앞에 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책임의 무게가 어떻게 갈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자화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