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요원 치고 주차장으로…월드컵 응원 가던 롤스로이스 차주, 뺑소니 '무죄'
보안요원 치고 주차장으로…월드컵 응원 가던 롤스로이스 차주, 뺑소니 '무죄'
월드컵 응원차 지인 태우고 후진하다 사고
피해자는 전치 2주 상해
핵심 쟁점은 '도주 의사'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카타르 월드컵 16강전 응원을 위해 지인들을 태우고 아파트 정문에서 후진하다 보안요원을 치고 그대로 주차장으로 들어간 롤스로이스 운전자가 뺑소니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운전자가 사고 발생 사실 자체를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사건은 2022년 12월 2일 저녁 8시 25분경,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 정문 앞에서 벌어졌다.
입주민인 피고인 A씨는 자정에 열리는 대한민국 대 브라질 월드컵 경기를 지인들과 응원하기 위해 자신의 롤스로이스 승용차를 몰고 있었다.
A씨가 편도 7차로 도로에서 차를 후진하던 중, 횡단보도 위에서 교통 통제 업무를 하던 24세 보안요원 B씨의 복부를 차 뒷부분으로 충격했다. B씨는 이 사고로 약 2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경추 염좌 등의 상해를 입었다.
하지만 A씨의 차량은 구호 조치 없이 잠시 멈췄다가 그대로 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결국 A씨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뺑소니 핵심은 도주 의사
뺑소니 범죄가 성립하려면 교통사고를 낸 행위 외에도, 피해자가 다친 사실을 미필적 고의로라도 인식하고 도망치려는 '도주 의사'가 있어야 한다.
이 사건을 심리한 서울서부지방법원 이순형 판사는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자신의 업무상 과실로 피해자를 사상했음을 인식하고도 사고 현장을 이탈해 도주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고장 난 후방 센서, 그리고 "진짜 쳤어?" 동승자 녹취록
무죄를 가른 결정적 증거는 차량 상태와 동승자들의 반응이었다. 경찰이 A씨와 함께 사고 상황을 재연해 본 결과, 해당 롤스로이스 승용차는 중고로 매입할 당시부터 후방 카메라와 후방 감지 센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였다.
사고 당시 차량에 타고 있던 동승자 3명 역시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오랜만에 만나 인사를 나누느라 뒤에 피해자가 있는 줄 몰랐고, 센서 경고음이나 충격음도 전혀 듣지 못했다"고 일관되게 증언했다.
특히 사고 며칠 뒤 A씨가 동승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CCTV 영상을 보니 진짜 사람을 쳤다. 너도 전혀 못 느꼈지?"라고 묻자, 동승자가 크게 놀라며 "몰랐다. 대박이다"라고 답한 녹취록이 법정에 제출됐다.
재판부는 이들이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허위 진술을 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엇갈린 피해자 진술, 사후 조치도 뺑소니와 달라
피해자 B씨의 진술은 재판 과정에서 신빙성을 잃었다.
B씨는 수사 과정에서 "운전자가 열려진 창문으로 나를 쳐다보고 그냥 갔다"고 주장했지만, 법정에서는 "눈이 마주치긴 했는데 창문이 열려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말을 바꿨다.
CCTV 영상에서도 B씨는 사고 직후 차량에 다가가 항의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편으로 이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A씨의 사후 행동은 범죄를 은폐하려는 뺑소니범의 일반적인 모습과 달랐다.
A씨는 사고 발생 약 30분 뒤 아파트 관리업체로부터 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내려와, 피해자 대신 교통 통제를 하던 교대 근무자에게 "치인 사람은 괜찮냐, 친 줄 몰랐다"고 물었다.
다음 날에는 보험사에 자신이 가해자임을 전제로 사고 접수를 하고 피해자 측에 보험접수번호를 전달했다.
재판부는 A씨가 음주 운전을 했다는 등의 정황도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데다, 신원이 확실한 아파트 입주민으로서 도주해 사고를 은폐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법원은 뺑소니 혐의에 대해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
[참고] 서울서부지방법원 2023고정1197 판결문 (2024. 12. 12.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