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체 다른 유언장 2개… 15년 간병한 오빠는 빌라를 지킬 수 있을까
필체 다른 유언장 2개… 15년 간병한 오빠는 빌라를 지킬 수 있을까
필체 다른 자필 유언장 등장에 효력 논란
변호사들 "유언 무효라도 '사인증여' 인정될 수 있어"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오빠가 아니었으면 난 못 버텼을 거야." 위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여동생은 생전 입버릇처럼 말했다. 15년간 지극정성으로 자신을 간병해 준 이복오빠 A씨(85)에게 남긴 것은 평생 모은 작은 빌라 한 채. 동생은 "내 집을 오빠에게 준다"는 자필 유언장을 남겼다.
하지만 장례 후 유언 검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졌다. 내용이 비슷하지만 필체가 미묘하게 다른 또 하나의 유언장이 발견된 것이다.
가족들은 "유언장이 두 개면 효력이 없는 것 아니냐"며 술렁였다. 게다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동생의 생모가 상속인으로 남아있어 A씨의 상속 절차는 벼랑 끝에 몰렸다. 26일 YTN 라디오 <조인섭 변호사의 상담소>에 소개된 사연이다.
안타까운 사연에 대해 법률 전문가들은 "유언장 자체는 무효가 될 수 있지만, 동생의 뜻을 지킬 법적 우회로는 있다"고 조언했다.
필체 다른 유언장, 휴지 조각 될까?
우리 민법은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에 대해 매우 엄격한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전문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직접 쓰고(자서) 날인(도장이나 지장)해야 한다.
방송에 출연한 법무법인 신세계로의 임경미 변호사는 냉정한 현실을 먼저 짚었다. 임 변호사는 "유언장이 2장이나 나왔고 필체가 다르다는 의심까지 있다면, A씨가 가진 자필 유언장은 법적 효력을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유언장에 주소가 빠지거나, 날짜를 다른 사람이 적어주기만 해도 무효로 본다. 심지어 도장 대신 사인만 해도 효력이 부인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임 변호사는 "이름과 도장, 날짜, 주소까지 모두 본인이 썼는지 꼼꼼히 따지는 것이 하급심 판례의 경향"이라고 지적했다.
유언이 안 되면 계약으로... '사인증여'가 희망
그렇다면 동생의 유지는 물거품이 되는 걸까. 여기서 등장하는 법적 개념이 바로 '사인증여'다.
사인증여란 증여자(동생)가 생전에 "내가 죽으면 재산을 주겠다"고 청약하고, 수증자(오빠)가 이를 승낙해서 성립하는 계약이다. 유언이 일방적인 의사표시라면, 사인증여는 쌍방 합의라는 점이 다르다.
임 변호사는 "설령 유언장이 형식을 갖추지 못해 무효라 하더라도, 동생이 사망을 조건으로 재산을 준다는 내용이 있고 그 증서를 오빠에게 건네줬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분석했다.
이어 "법원은 동생과 A씨 사이에 유효한 사인증여 계약이 성립했다고 보고, 그 효력을 인정해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유언장이라는 종이의 형식적 효력은 없더라도, 그 안에 담긴 '재산을 주겠다'는 약속 자체를 계약으로 인정받는 셈이다.
120세 노모가 상속인? '부재자 재산 관리인' 선임해야
문제는 또 있다. 동생의 가족관계등록부상 친어머니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A씨는 85세, 동생은 82세다. 계산대로라면 생모는 120세가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속재산을 등기하려면 상속인 전원의 협의가 필요하다. 임 변호사는 "현재 120세로 살아있다고 보는 건 무리지만, 서류상 생존해 있다면 A씨와 형제들끼리만 한 상속재산 분할 협의는 무효가 된다"고 지적했다.
생사가 불분명한 생모를 사망 처리하는 실종 선고도 쉽지 않다. 법적으로 A씨(이복오빠)는 생모의 직접적인 상속인이 아니어서 청구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임 변호사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부재자 재산 관리인' 제도를 제시했다. 그는 "A씨는 동생에게 부동산을 받기로 한 '상속채권자'의 지위가 있으므로, 법원에 생모를 대신할 재산 관리인을 선임해달라고 신청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결국 A씨가 동생의 빌라를 받기 위한 로드맵은 다음과 같다. ①법원에 생모를 위한 부재자 재산 관리인 선임을 신청한다. ②선임된 관리인을 상대로 '동생과의 사인증여 계약을 이행하라'는 소송을 제기한다. ③승소 판결을 통해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친다.
임 변호사는 "동생이 마지막까지 오빠에게 집을 주고 싶어 했던 그 의사가 문서에 담겨 있다면, 법적으로 그 뜻을 실현할 방법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