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단당한 친구에게 건 전화, 스토킹일까 아닐까
차단당한 친구에게 건 전화, 스토킹일까 아닐까
화해와 오해 반복 끝 마주한 '차단', 법률가들의 냉엄한 경고

친구와 갈등과 화해를 반복하다 연락이 차단된 경우, 과거 행적만으로는 스토킹죄 성립이 어렵다. 하지만 '차단'은 명백한 거절 신호이므로, 이후 단 한 번의 추가 연락이라도 스토킹 범죄가 될 수 있다. AI 생성 이미지
지난 1년간 친구와 오해, 화해, 다툼을 반복하다가 모든 연락이 차단된 한 시민의 사연. 짜증에 못 이겨 걸었던 10통의 전화와 술김에 내뱉은 욕설이 과연 스토킹 범죄가 될까?
법률 전문가들은 과거 행적만으로 범죄 성립은 어렵지만, 친구의 '차단' 조치는 명백한 거절 신호이므로 단 한 번의 추가 연락이 모든 것을 뒤엎고 당신을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고 한목소리로 경고한다.
친구 사이의 갈등이 어떻게 형사 사건으로 비화되는지,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파헤쳐 본다.
"잘 지내냐" 안부 물었을 뿐인데…돌아온 건 '전면 차단'
시작은 친구의 사과였다. 작년 9월, 의리마저 저버리는 듯했던 친구가 11월에 사과하며 관계는 회복되는 듯했다.
하지만 그 달 말, 전화를 받지 않는 친구에 대해 짜증이 나서 10통 가까이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하루 뒤 "요즘 힘들어서 오는 연락들을 잘 받지 않는 중이었다. 생각나면 연락해라"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올해 2월엔 술김에 욕설 전화를 했지만 다음 날 바로 사과했고, 4월엔 친구가 자신의 험담을 한다는 소문을 확인하려다 오히려 오해를 풀고 덕담까지 나눴다.
그렇게 롤러코스터 같던 관계가 이어지던 7월 2일, 문득 고3 시절이 떠올라 안부를 물으려던 그는 자신이 모든 소통 수단에서 차단당했다는 냉혹한 현실과 마주했다. 그의 머릿속은 '혹시 내 행동이 스토킹으로 처벌받을 수 있을까?'라는 공포로 가득 찼다.
"지속성 부족, 화해 존재"…과거 행적은 '무죄'에 가까운 이유
다행히 다수의 법률 전문가는 과거의 행위들만으로는 스토킹죄가 성립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스토킹 처벌법의 핵심 요건인 '지속성'과 '반복성'이 부족하고, 각 연락 사이에 화해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상훈 변호사(법무법인 도모)는 "질문자님의 사례처럼 장기간에 걸쳐 띄엄띄엄 이루어진 연락은 법률상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행위’로 포섭되기 어렵습니다"라며 "각 연락 사이에 합리적인 사유나 상호 간의 화해 과정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이규희 변호사(법무법인 대한중앙) 역시 4월의 연락에 대해 허위사실 유포 여부를 확인하려 했던 점을 들어 "연락을 취할 만한 객관적이고 정당한 이유가 있는 행위"라고 평가했다.
즉, 상대방이 명확한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고, 연락할 만한 이유가 있었으며, 갈등이 봉합되는 과정이 있었기에 과거 행적을 모두 묶어 범죄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차단은 명백한 거절 신호"…지금부터가 진짜 위험
하지만 모든 변호사가 이구동성으로 지적한 '진짜 위험'은 바로 '지금부터'다. 친구의 '차단' 조치가 모든 상황을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허은석 변호사(법률사무소 한강)는 "7월 2일 연락 이후 상대방이 전화와 메신저를 모두 차단하였다면, 그 시점부터는 연락을 원하지 않는 의사가 객관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볼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경고했다. 이제부터의 추가 연락은 명백한 거부 의사를 무시한 행위로 평가된다.
김정길 변호사(법무법인 LKB평산)는 "실제 통화가 성립하지 않았더라도 반복 발신으로 벨소리·부재중 표시 등이 남게 하는 행위도 스토킹행위가 될 수 있다는 취지 판단된 사례들도 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재현 변호사(반포 법률사무소)는 한층 더 강하게 경고했다. "현재의 '전면 차단'은 명확한 거절 의사이므로, 이후 추가 연락을 단 한 번이라도 시도하면 스토킹 혐의가 성립될 위험이 급격히 커집니다."
'연락 중단'이 최선의 방어…만일의 사태 대비책은?
전문가들의 결론은 하나로 모인다. '즉시 모든 연락을 멈추는 것'이 유일하고도 최선인 방어 전략이다.
김상훈 변호사는 "지금부터는 어떠한 경로로도 상대방에게 접근하지 않는 것이 사건화를 방지하는 최선의 대응입니다"라고 못 박았다.
혹시라도 상대방이 과거의 일까지 모두 묶어 고소할 경우에 대한 대비책도 제시됐다. 민경남 변호사(법률사무소 태희)는 "상대방과 오해를 풀고 서로 덕담을 나누며 원만하게 통화를 마친 정황이 있으므로 범죄 성립의 핵심인 지속성과 반복성이 단절되었다고 주장할 여지가 존재할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조언하며, 과거 원만한 관계 회복을 증명할 대화 기록 등 증거를 미리 확보해 둘 것을 권했다.
결국 그에게 남은 최선의 수는 친구와의 관계에 씁쓸한 마침표를 찍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과거의 '화해' 기록들을 차분히 정리하는 것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