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탐지기로 지연시키는 가해자 전략, 피해자의 돌파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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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탐지기로 지연시키는 가해자 전략, 피해자의 돌파구는?

2025. 09. 24 08:17 작성2025. 09. 24 12:35 수정
조연지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yj.jo@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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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전문가들 “증거능력 없는 시간끌기 전략, 피해자 무너뜨리는 2차 가해”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가해자 측에서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며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겠다고 합니다.”


수사관의 말에 피해자 A씨의 마음은 무너졌다. 명백한 증거와 일관된 진술로 여기까지 왔지만, 가해자가 내민 ‘거짓말탐지기’라는 카드 하나로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이 밀려온다. 피해자가 느끼는 이 두려움은 최근 성범죄 사건 현장에서 반복되고 있다.


피해자의 불안에 대해 법률 전문가들과 함께 그 실체와 대응 전략을 짚었다.


‘기계의 배신’, 왜 법정은 믿지 않는가

거짓말탐지기 결과는 재판에서 진실을 가릴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없다. 법원은 생리적 반응이 항상 진실을 반영하지는 않는다는 이유로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 대법원은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나는 심박수, 혈압 등 생리적 반응이 100%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대법원 2005도130 판결).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수사기관이 피의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참고자료’일 뿐, 판사가 유죄의 근거로 삼지는 않는다”고 선을 긋는다.


법무법인 정향 김연수 변호사는 “실제 성범죄 피해자를 대리한 사건에서 피고인이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 ‘진실 반응’을 받았음에도, 법원은 이를 배척하고 유죄를 선고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가해자가 정신과 약물을 복용 중이라면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법무법인 선승 안영림 변호사는 “정신과 약 복용은 그 자체로 거짓말탐지기 부적합 사유”라며 “약물이 기계가 측정하는 생리 반응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수개월의 지연 피해자를 무너뜨리는 ‘2차 가해’

가해자 측이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빌미로 수사를 몇 달씩 지연시키는 것이 진짜 문제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를 의도적인 ‘시간 끌기’ 전략으로 분석한다.


조사 일정 조율과 결과 분석에 통상 1~3개월이 소요되는데, 이 기나긴 기다림은 피해자의 의지를 꺾고 지치게 만들어 합의를 유도하려는 악의적 전략일 가능성이 높다. 법률사무소 새율 강민기 변호사는 “이는 피해자에게 또 다른 형태의 가해, 즉 ‘2차 가해’가 된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수사기관이 반드시 결과를 기다려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객관적 증거가 충분하다면, 수사기관의 판단에 따라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사건을 검찰로 넘길 수 있다. 결국 가해자의 흔들기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피해자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셈이다.


‘심신미약’ 주장, 괘씸죄만 더할 뿐

가해자가 정신과 치료 이력을 내세워 ‘심신미약’(사물 변별이나 의사 결정 능력이 미약한 상태) 감형을 노릴 수 있다는 점도 피해자의 불안을 키운다. 그러나 이 카드 역시 법정에서 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법률사무소 조율 조가연 변호사는 “단순히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는 사정만으로 심신미약이 인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범행 당시 약물 등의 영향으로 사물 변별 능력이 현저히 저하됐다는 점이 의학적·법적으로 명확히 입증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리라법률사무소 김현중 변호사는 한발 더 나아가 “계획적인 범행 정황이 뚜렷한데도 우울증 등을 주장하면, 오히려 판사가 더 괘씸하게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결국 법의 저울을 움직이는 것들

그렇다면 가해자의 방어 전략에 맞서 피해자가 쥘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예서 법률사무소 배재용 변호사는 “사건이 불필요하게 지연된다고 판단되면, ‘수사 지연으로 인한 2차 피해가 극심하니 신속히 처리해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변호인을 통해 제출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가해자의 흔들기에 동요할 필요는 없다. 사건의 향방을 가르는 것은 결국 피해자의 일관되고 구체적인 진술,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단단한 객관적 증거들이다.


예를 들어, 사건 전후 주고받은 메시지, 통화 기록, CCTV 기록, 병원 진료 기록, 범행 장소의 물리적 증거 등이 이에 해당한다.


법의 저울은 기계의 깜빡이는 신호가 아닌, 고통 속에 지켜낸 진실의 무게에 따라 움직인다. 당신의 진술과 증거가 가장 강력한 무기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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