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쓴 학원, 나갈 때 '텅 빈 공실'로 만들라고요?"
"4년 쓴 학원, 나갈 때 '텅 빈 공실'로 만들라고요?"
계약서엔 '원상복구' 뿐인데…건물주 "칸막이·바닥 다 뜯어라" 요구, 폐업지원금 언급까지

임대차 계약 종료 시 임차인은 입주 전부터 있던 시설을 철거할 의무가 없다. / AI 생성 이미지
4년 가까이 학원을 운영하다가 폐업을 결정한 A씨. 상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건물주로부터 예상치 못한 요구를 받았다.
A씨가 입주할 당시 상가는 이미 칸막이, 바닥, 벽 등 학원 인테리어가 완비된 상태였다. 책걸상과 에어컨 등 집기류도 모두 갖춰져 있었다. A씨는 이 시설을 그대로 인수해 추가 공사 없이 사용해 왔다.
그런데 임대인은 계약 종료를 앞두고 A씨에게 "칸막이와 바닥 등을 모두 철거해 완전한 공실 상태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폐업지원금을 받아 철거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까지 덧붙였다.
A씨는 자신이 설치하지도 않은 시설물까지 철거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 궁금해 변호사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인테리어 된 그대로 들어왔는데"…건물주, 왜 '완전 공실' 반환을 요구하나
A씨는 약 4년간 학원을 운영했다. A씨가 임대차 계약을 맺고 입주했을 때, 해당 상가는 이전 임차인이 사용하던 학원 시설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였다. 칸막이와 바닥, 벽면 인테리어는 물론 책상과 에어컨까지 있었다.
A씨는 이 시설을 그대로 사용했을 뿐, 추가로 인테리어를 하거나 구조를 변경하지 않았다. 그런데 임대인은 계약 만료 시점에 이 모든 시설을 철거하고 상가를 텅 빈 상태로 만들어 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임대인은 A씨가 받을 수 있는 폐업 지원금을 거론하며 철거 비용을 충당하라는 취지의 발언까지 했다. A씨 입장에서는 손대지도 않은 시설의 철거 비용까지 떠안아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계약서에 '원상복구'만 있다면…"입주 당시 상태"가 기준, 철거 의무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A씨가 직접 설치하지 않은 시설을 공실 상태로 철거할 의무는 원칙적으로 없다. 변호사들은 임대차계약서에 '원상복구'라고만 명시돼 있다면, 그 기준은 '입주 당시의 상태'라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랜드로 신지수 변호사는 "계약서에 '원상복구'만 명시된 경우, 원상복구의 기준은 입주 당시의 상태"라며 "A씨가 입주 시 이미 학원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고 추가하거나 변경한 것이 없다면, 그 상태 그대로 반환하는 것이 원상복구 의무를 이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대인이 요구하는 완전한 공실 상태 반환은 계약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베테랑 황윤경 변호사 역시 "계약서에 '원상복구'라는 문구만 있다면, 그 기준은 언제나 '입주 당시의 상태'"라며 "판례 역시 전 임차인이 해 둔 시설을 그대로 인수해 사용한 경우에는 그 부분까지 철거할 의무는 없다는 취지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손댄 것이 없다면 인수받은 그대로 넘기는 것이 의무 이행이라는 설명이다.
임대인이 언급한 '폐업지원금'에 대해서도 변호사들은 원상복구 의무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법무법인 쉴드 이진훈 변호사는 "폐업지원금으로 철거하라는 임대인의 언급은 법적 근거 없는 요구이므로 그대로 따를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책걸상, 독서실 책상, 에어컨 등 입주 당시부터 있던 시설물도 마찬가지다. A씨가 설치한 것이 아니므로 그대로 두고 반환할 수 있다는 게 변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단, 계약서에 '이 문구'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져…반드시 확인할 특약은?
다만 이 원칙에도 예외는 있다. 임대차계약서에 특별한 약정, 즉 '특약'이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법률사무소 강현 최용석 변호사는 "이전 학원 운영자로부터 영업권과 시설을 함께 인수하고 임대차계약을 새로 체결한 경우에는 주의해야 한다"며 "대법원은 계약 체결 경위, 입주 당시 상태 등을 종합하여 전 임차인이 설치한 시설까지 철거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사례도 있다"고 지적했다.
변호사들이 꼽은 주의해야 할 특약 문구는 다음과 같다. ▲"분양 당시 상태(공실 상태)로 원상복구한다" ▲"전임차인의 시설물에 대한 원상복구 책임을 임차인이 승계한다" ▲"임차인이 설치한 모든 시설물 철거" 등 구체적인 내용이 계약서에 있다면 철거 의무가 인정될 수 있다.
법무법인대한중앙 조기현 변호사는 "임대인과 협의할 때에는 입주 당시부터 존재했던 시설이라는 점을 사진이나 자료로 설명하고, 철거 범위에 대한 법적 근거와 계약상 근거를 제시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만약 협의가 되지 않아 보증금에서 철거 비용이 공제될 경우를 대비해, 입주 당시 사진이나 영상, 인수인계 서류, 당시 부동산 광고 자료 등을 미리 확보하고 대화 내용을 문자나 메일로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변호사들은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