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막은 차 밀었을 뿐인데 '재물손괴범'?…80만원 요구에 숨은 법적 쟁점
가로막은 차 밀었을 뿐인데 '재물손괴범'?…80만원 요구에 숨은 법적 쟁점
이중주차 차량 밀었다가 형사 입건된 운전자, 과도한 합의금 요구에 '무고' 맞대응 고심. 법률 전문가들 '고의성 입증'이 관건

주차장에서 앞을 막은 차를 밀었다가 재물손괴로 고소당한 운전자는 파손 '고의'가 없어 무혐의 가능성이 높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차 뺐을 뿐인데 '손괴범' 낙인…80만원 뜯길 뻔한 운전자의 호소
아파트 주차장에서 자신의 차를 가로막은 차량을 밀었다가 재물손괴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된 한 운전자의 사연이다.
차주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으며, 법률 전문가들은 형사 처벌의 핵심 요건인 '고의성'이 없어 무혐의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미안하다" 말 대신 날아온 80만원 청구서
사건은 눈이 많이 내린 어느 겨울날, 아파트 1층 주차장에서 시작됐다. A씨는 정상적으로 주차된 자신의 차량 앞을 다른 차량이 연락처도 없이 가로로 막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급한 마음에 A씨는 사이드 브레이크가 풀려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차를 밀어보기로 했다.
빙판길에 발이 미끄러지자, A씨는 차량 운전석과 뒷좌석 문손잡이를 잡고 뒤로 두어 번 힘을 줬다. 하지만 차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차주 B씨가 나타났다. B씨는 사과 한마디 없이 차를 빼주더니, 돌연 "손잡이가 이상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A씨는 황당했지만, B씨는 두 시간 뒤 A씨를 재물손괴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B씨가 요구한 합의금은 무려 80만 원. 경차(모닝) 손잡이 교체비 50만 원에 렌터카 비용 30만 원이 더해진 금액이었다.
CCTV 속 진실…'고의' 없는 행위도 처벌될까?
A씨는 너무 억울했다. 수소문 끝에 알아본 실제 수리비는 10만 원이 채 되지 않았고, 수리 시간도 30분이면 충분했다. A씨가 이 사실을 알리자 B씨는 "피해보상비"라며 말을 바꿨고, 결국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 사건의 핵심을 '고의성' 여부로 보고 있다. 재물손괴죄는 타인의 재물을 파손하려는 '고의'가 있을 때 성립하는 범죄다. JY법률사무소 이재용 변호사는 "차량을 밀어보는 과정에서 손잡이를 잡은 것은 차를 이동시키기 위한 행위"라며 "차량 손상에 대한 고의나 실제 손괴 행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법무법인 정향의 오주하 변호사 역시 "차량 이동을 위해 손잡이에 힘을 준 것만으로 재물손괴의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당시 빙판길이었다는 점 등은 의뢰인에게 유리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과실은 무죄, 부풀려진 견적은 무고죄 가능성"
전문가들은 A씨의 행위가 설령 과실로 인정되더라도 형사 처벌 대상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굿앤굿 법률사무소 최희원 변호사는 "형법은 과실에 의한 재물손괴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고 명확히 했다. 즉, 실수로 남의 물건을 망가뜨린 것만으로는 범죄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B씨의 행동에 주목한다. 법무법인 에스엘 이성준 변호사는 "실제 수리비 견적서 등 객관적 증거를 통해 혐의를 벗을 수 있을 것"이라며 "변호사 조력을 받아 무고죄 고소를 진행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말했다.
실제 수리비가 10만 원 미만임에도 80만 원을 요구한 것은 허위 사실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형사 처벌받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법률사무소 유(唯) 박성현 변호사도 "상대방이 과도한 합의금을 요구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무고죄 가능성도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억울한 재물손괴 혐의, 현명한 대처는?
결론적으로 법조계는 A씨의 재물손괴 혐의가 인정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보고 있다. A씨가 확보한 CCTV 영상과 실제 수리비 견적은 무혐의를 입증할 강력한 증거가 될 전망이다.
이번 사건은 이중주차 문제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이 어떻게 형사 사건으로 비화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전문가들은 유사한 상황에 처했을 때, 직접 해결하려 하기보다 관리사무소나 경찰에 먼저 연락해 공식적인 절차를 밟는 것이 안전하다고 조언한다.
억울한 혐의를 받았다면, 감정적 대응보다는 CCTV 등 객관적 증거를 신속히 확보하고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냉정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