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이체 알바인 줄 알았는데…'보이스피싱 공범' 낙인 찍힌 고3
단순 이체 알바인 줄 알았는데…'보이스피싱 공범' 낙인 찍힌 고3
'계좌 막히면 10배 보상' 텔레그램 속삭임에 인생 건 고등학생, 남은 건 '사기 공범' 혐의뿐

고3 학생인 A군이 텔레그램 '고수익 이체 알바'에 속아 보이스피싱 자금세탁에 연루됐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텔레그램 '이체 알바'의 덫, 보이스피싱 연루된 고3
통장 5개가 한꺼번에 막혔다. '단순 이체'만 하면 된다던 텔레그램 '꿀알바'가 고등학교 3학년 A군을 보이스피싱 범죄의 공범으로 만든 순간이었다. 돈이 급했던 학생의 절박함을 파고든 범죄 조직의 덫은 너무나도 교묘하고 치명적이었다.
'계좌 막히면 10배 줄게', 달콤한 약속 뒤 사라진 고용주
모든 것은 텔레그램에서 시작됐다. A군은 '고수익 이체 알바'라는 문구에 혹했다. 하는 일은 간단했다. 자신의 통장으로 돈이 들어오면, '고용주'가 지정하는 다른 계좌로 옮겨주기만 하면 됐다. 첫 이체 후 토스 계좌가 바로 정지되자 A군은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고용주는 "별일 아니다. 다른 계좌도 정지되면 10배로 보상해주겠다"며 그를 안심시켰다.
A군은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그가 동원한 계좌 5개 모두 '사기이용계좌'로 등록돼 지급정지 철퇴를 맞았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달콤한 약속을 건넸던 고용주는 텔레그램 대화 내용을 모두 삭제하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A군의 손에는 '10배 보상'을 약속했던 메시지 캡처 한 장만 덩그러니 남았다.
'몰랐다'는 항변, 왜 법정에선 통하지 않을까?
A군처럼 범죄에 연루된 이들은 대부분 "불법인 줄 몰랐다"고 억울함을 호소한다. 하지만 법의 잣대는 냉정하다. 법조계는 A군의 행위가 전형적인 보이스피싱 자금세탁 과정에 이용된 '현금 전달책'의 역할이라고 분석한다. 법무법인 명륜 오지영 변호사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및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소지가 크다"며 "사기 범죄를 도운 '사기방조' 혐의로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법원은 '혹시 이거 불법 아닐까?'라고 한 번이라도 의심했다면, 범죄가 벌어져도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인 것과 같다고 본다. 이것이 바로 '미필적 고의'다. '나는 범죄를 저지를 거야!'라고 마음먹지 않았더라도, 상식 밖의 거래 방식에서 위험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법무법인 공명 김준성 변호사는 "고3 학생이라는 점이 참작될 수는 있지만, 만 14세 이상은 형사책임 대상이므로 처벌을 피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골든타임은 바로 지금, '피해자' 입증할 마지막 기회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길은 있다. 변호사들은 '신속한 초기 대응'이 최악의 결과를 막을 유일한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가장 먼저 모든 불법 행위를 즉시 멈추고, 상황을 부모님께 알려야 한다. 이후 텔레그램 아이디, 대화 캡처, 송금 계좌 등 남은 증거를 최대한 확보해 경찰에 자수하는 것이 급선무다.
법무법인 선승 안영림 변호사는 "사회 경험이 부족해 범죄인 줄 몰랐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소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진 신고는 형량을 줄일 수 있는 결정적 사유가 된다. 수사 초기부터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자신 역시 범죄 조직에 속은 '또 다른 피해자'임을 입증하는 것이 '보이스피싱 공범'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열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