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화장실 몰카, 경찰 전화 한 통에 드러난 '잊혀진 범죄'
3년 전 화장실 몰카, 경찰 전화 한 통에 드러난 '잊혀진 범죄'
다른 사건으로 잡힌 가해자, 압수된 기기에서 과거 범행 드러나... 피해자, '정의 실현'과 '현실 보상' 사이 고뇌

3년 전 지인에게 몰카 피해를 당한 여성이 가해자가 다른 범죄로 잡히면서 뒤늦게 피해 사실을 알게 됐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정의 실현’이냐 ‘현실 보상’이냐…
한 여성에게 3년 전 그날은 그저 스쳐 지나간 수많은 날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낯선 번호로 걸려 온 전화 한 통은 그 평범했던 기억을 송두리째 범죄의 현장으로 바꿔놓았다.
"화장실 몰카 피해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경찰서에 와서 진술해주세요."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의 파편이 경찰의 통보로 잔인한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불법 촬영 범죄의 피해자가 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통보받으며 겪게 된 한 여성의 혼란과 법적 딜레마를 취재했다.
내 집 화장실이 아니었다, 범인은 지인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가해자는 최근 공공장소 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이 그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디지털 기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범죄들이 추가로 드러났다.
피해자 A씨가 3~4년 전 촬영된 영상도 그중 하나였다. 촬영 장소는 A씨가 방문했던 가해자의 집 화장실이었다. 법무법인 베테랑의 오승윤 변호사는 “피의자의 집에서 촬영당했다는 것은 곧 피의자가 주변 지인일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A씨 외에도 다수의 피해자가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다행히 유포 정황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A씨는 수년 전 지인의 집에서 겪었을지 모를 끔찍한 순간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범인이 다른 범죄로 붙잡히지 않았다면 영원히 묻혔을 ‘잊혀진 범죄’였다.
7년의 공소시효…'잊혀진 범죄'도 처벌 피할 수 없다
범행이 수년 전에 일어났지만, 가해자는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가해자의 행위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가 규정하는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에 해당한다.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의 공소시효는 2020년 5월 법 개정으로 7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났다. 이번 사건은 법 개정 전인 3~4년 전에 발생했으므로 공소시효 7년이 적용된다. 범인을 처벌하는 데는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황이다.
특히 이번 사건처럼 여러 명을 상대로, 심지어 자신의 집과 공공장소를 가리지 않고 범행을 저지른 경우 상습성이 인정돼 더 무거운 처벌이 내려질 수 있다. 법률사무소 필승의 김준환 변호사는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의 경우 최근 N번방 사건 이후로 처벌 수위가 매우 높아져 초범이어도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많다”며 사안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정의 실현'이냐 '현실 보상'이냐…피해자의 갈림길
이제 A씨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정의 실현'을 위해 가해자의 엄벌을 구할 것인가, '현실적 보상'을 위해 합의에 나설 것인가.
첫 번째 길은 가해자를 강력히 처벌하고 민사소송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다. 김일권 변호사는 “가해자를 엄하게 실형으로 처벌해달라고 진술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이는 정의를 바로 세우는 길이지만, 별도의 민사소송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고 위자료 액수도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
두 번째 길은 형사 절차에서 합의하는 것이다. 법무법인 웨이브의 이창민 변호사는 “민사소송보다 형사절차에서 피의자를 압박하며 합의금을 많이 받는 것이 더 실효성 있다”고 강조했다. 가해자가 실형을 피하려 거액의 합의금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A씨의 선택은 '가해자의 죗값을 묻는 정의 실현'과 '신속하고 실질적인 피해 회복'이라는 두 가치 사이의 어려운 저울질이 된 셈이다.
기억나지 않아도 괜찮다, 이렇게 대응하라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희미해도 경찰 조사에 응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법률사무소 조이의 윤관열 변호사는 “경찰이 피해자로 특정하여 연락한 이상, 증거가 확보된 상태일 가능성이 크므로 부담을 가지지 말고 조사에 응하면 된다”고 말했다.
기억나는 사실을 최대한 진술하되, 불분명한 부분은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사 과정에서 여성 조사관을 배정받거나, 변호사나 가족과 동석하는 ‘신뢰관계인 동석’ 제도도 활용할 수 있다.
검사 출신인 서아람 변호사는 “경찰 조사 시 의사에 반해 촬영됐다는 점과 엄벌 의사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