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내가 유혹했다' 탄원서 내…의제강간 가해자 3년 실형에도 끝나지 않은 부모의 전쟁
딸은 '내가 유혹했다' 탄원서 내…의제강간 가해자 3년 실형에도 끝나지 않은 부모의 전쟁
의제강간 피해자 부모의 피눈물 섞인 민사소송 분투기…전문가들 '3년 시효, 단 하루도 지체해선 안돼'

10대 딸을 의제강간한 가해자에게 3년 형이 주어졌지만, 아버지 A씨의 눈물은 그치지 않고 있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형사재판은 끝났지만,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다. 가해자는 3년형을 받았고 딸은 '자신이 유혹했다'는 탄원서를 냈다. 무너진 가족의 삶을 되찾기 위한 부모의 피눈물 섞인 민사소송 분투기.
판결문 잉크도 마르지 않은 서류 위로 아버지 A씨의 눈물이 툭 떨어졌다. 10대 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가해자는 법의 심판을 받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은 기쁨보다 절망에 가까웠다.
재판 과정에서 딸이 직접 '자신이 유혹했다'며 가해자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냈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죗값을 치르게 됐지만, 우리 가족의 무너진 삶은 누가 보상해주나?" 형사 재판은 끝났지만, 가족의 상처를 보듬고 실질적인 피해를 배상받기 위한 또 다른 싸움이 이제 막 시작됐다.
"가해자는 감옥에 있는데…" 부모의 망설임, 법의 경고 '3년 시효, 단 하루도 늦춰선 안돼'
A씨 부부의 첫 고민은 소송의 시기였다. "교도소에 있는 사람을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출소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 아닌지 막막합니다." 가해자가 수감 중인 현실 앞에서 부부는 또 한 번 무력감을 느꼈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이런 망설임이 가장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법무법인 세담 허유영 변호사는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잘라 말하며 "민사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사라진다. 지금 당장 소송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해자의 수감 여부와 관계없이 민사소송은 진행할 수 있으며, 오히려 시간을 지체하면 배상받을 권리 자체가 소멸될 수 있다는 서늘한 경고였다.
"그 부모에 그 자식인데…" 분노의 화살, 그러나 법의 잣대는 냉정했다
"자식을 저렇게 키운 부모에게도 책임을 묻고 싶습니다. 그게 사람의 도리 아닙니까?" A씨 부부는 가해자뿐만 아니라 그의 부모에게도 책임을 묻고 싶었다. 자식의 잘못을 방관한 데 대한 도의적 책임을 넘어 법적 책임까지 지게 하고 싶은 분노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법의 잣대는 냉정했다. 가해자가 성년인 이상, 그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본인에게 돌아갔다. 로티피 법률사무소 최광희 변호사는 "민사소송은 상대방 남성에 대해 제기할 수 있을 뿐, 그의 부모에게 제기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성년 자녀의 행동에 대해 부모가 법적 책임을 지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이므로, 소송의 상대방은 가해자 본인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딸의 '내가 유혹했다' 탄원서, 민사소송의 '독'이 될까 '약'이 될까
"재판 내내 우리 부부의 가슴을 가장 무겁게 짓눌렀던 건 딸 아이의 탄원서였습니다. '자신이 유혹했다'는 그 글자가 민사소송에서 우리 발목을 잡지 않을까 밤잠을 설칩니다."
부모의 가장 큰 두려움은 형사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불리한 정황'들이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의제강간죄(13세 이상 16세 미만 미성년자와 동의하에 성관계를 해도 처벌하는 범죄)의 법적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이엘 민경철 변호사는 "판결문에 '폭행·협박 없음'이라고 적힌 것은, 처벌이 더 무거운 미성년자강간죄가 아닌 의제강간죄가 성립된 이유를 설명한 것일 뿐 가해자의 책임이 가볍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쉴드 임현수 변호사 역시 "의제강간죄는 피해자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성립하는 범죄"라며 "딸의 탄원서와 무관하게 형사 유죄 판결 자체가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을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라고 분석했다. 다만, 탄원서 내용이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액수를 산정할 때 일부 감액 요소로 고려될 가능성은 남아있다.
"당장 돈이 없어도 괜찮다"…미래를 향한 '집행권원' 확보 전쟁
"설령 지금 당장 돈 한 푼 못 받는다고 해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이 소송은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닙니다." A씨 부부의 다짐처럼, 민사소송은 당장의 금전 배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소송을 통해 청구할 수 있는 손해는 정신과 치료비 등 '재산적 손해'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다. 특히 피해자인 딸뿐만 아니라, 그 과정을 지켜보며 고통받은 부모 역시 각자의 위자료를 청구할 권리가 있다.
설령 가해자가 현재 무일푼이라도 소송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 법무법인 공명 김준성 변호사는 "민사 판결을 받아두면 '집행권원(강제집행을 할 수 있는 권리 문서)'이 생긴다"며 "10년마다 시효를 연장하며 가해자가 미래에 벌어들일 급여나 재산을 압류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된다"고 설명했다. 지금의 소송이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되는 셈이다.
형사 처벌은 국가가 내리는 벌일 뿐, 피해자의 찢긴 마음을 직접 꿰매주진 않는다.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은 부부는 다시 서류를 집어 들었다. 딸의 아픈 기억이 담긴 탄원서가 아니었다. 이제는 무너진 가족의 삶을 바로 세우고, 딸의 미래를 지켜줄 소장(訴狀)을 쓰기 위해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