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는 남입니다”…연락 끊긴 아버지 동의 없이 ‘성(姓)’ 바꿀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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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는 남입니다”…연락 끊긴 아버지 동의 없이 ‘성(姓)’ 바꿀 수 있나

2026. 01. 02 12:35 작성
최회봉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caleb.c@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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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단순 희망’ 아닌 ‘변경 필요성’ 입증 요구…개인의 정체성과 가족 질서 사이의 딜레마

이혼 후 연락 끊긴 아버지의 성을 바꾸려는 30대 여성 사례로 성인 자녀의 성본 변경 조건을 알아본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내 이름에서 아버지를 지우고 싶습니다”


서른 해 넘게 아버지의 성(姓)으로 살아온 30대 기혼 여성 A씨. 부모님의 이혼 후 기억조차 희미한 아버지의 흔적인 ‘유(兪)’씨 성을 버리고, ‘류(柳)’씨 성을 취득하기 위해 법원의 문을 두드리려 한다.


“아버지 동의 없이, 내 성씨를 바꿀 수 있을까요?”라는 그의 질문은 단순히 이름 하나를 바꾸는 문제를 넘어, ‘나’는 누구이며 가족이란 무엇인지를 묻는 깊은 고백이다.


법은 한 개인의 간절한 손을 들어줄까, 아니면 ‘가족 질서’라는 보이지 않는 벽 앞에 멈춰 세울까.


‘바꾸고 싶다’는 마음만으론 안 돼…법원이 찾는 ‘필요성’


결론부터 말하면,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 동의 없이 성씨를 바꾸는 것은 법적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다. 법원이 성씨 변경을 허가하는 절대 기준은 ‘자의 복리(자녀의 행복과 이익)’인데, 이는 성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대법원은 “단순히 개인적인 선호나 주관적 희망만으로는 성씨 변경을 허가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지금의 성을 계속 사용하는 것이 사회생활에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주는지, 왜 성을 바꿔야만 하는지에 대한 ‘변경의 필요성’을 객관적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의지 변호사는 “단순 선호가 아닌, 변경의 필요성에 대한 구체적 입증이 관건”이라며 “한 사람의 성이 바뀌면 형제와 성이 달라지는 등 가족 관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에 법원이 매우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A씨의 간절한 마음이 법원을 설득할 ‘필요성’으로 인정받는 것이 첫 번째 관문인 셈이다.


연락 끊긴 아버지의 동의, ‘필수’ 아닌 ‘참고’


A씨의 가장 큰 걱정은 연락조차 닿지 않는 아버지의 동의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다행히 아버지의 동의가 성씨 변경의 필수 조건은 아니다. 현행 가사소송규칙은 법원이 부모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고 규정할 뿐, 동의를 강제하지는 않는다.


장휘일 변호사는 “아버지의 동의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가정법원에 성씨 변경을 청구해 다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오히려 아버지와의 오랜 단절은 A씨에게 유리한 카드가 될 수도 있다.


황미옥 변호사는 “친부가 과거 양육 의무를 저버렸거나 가정폭력 이력이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설령 부동의하더라도 법원이 변경을 허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부재가 곧 성씨 변경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변경’이냐 ‘정정’이냐…증명의 갈림길


A씨가 법정에서 펼쳐야 할 논리는 크게 두 가지 길로 나뉜다. ‘성·본 변경’과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이다. 김태운 변호사는 A씨의 사례가 “출생 당시 성씨가 잘못 기재됐음을 바로잡는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에 해당할 수 있다”고 봤다. 이 경우, 본래 ‘류(柳)’씨 집안이었음을 증명할 조상의 호적등본 같은 역사적 자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A씨처럼 “유씨로 살아와서 관련 자료가 없다”면, ‘성·본 변경’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는 과거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성으로 인한 불편을 해소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미래를 바꾸는 절차이다.


결국 A씨는 아버지와의 단절이 자신의 삶에 어떤 고통을 줬는지, 왜 ‘류’씨라는 새로운 성을 통해 온전한 ‘나’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법정에서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나’를 찾는 여정…법원은 가족의 의미를 묻다


A씨의 도전은 한 개인의 이름 찾기를 넘어 우리 사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혈연으로 맺어졌지만 정서적 유대와 책임이 사라진 관계에서, ‘성씨’라는 굴레는 개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개인의 정체성을 결정할 권리는 과연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가.


법원의 결정은 단순히 한 사람의 성씨를 바꾸는 것을 넘어, 이 시대의 ‘가족’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아버지의 흔적을 지우고 오롯이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려는 한 여성의 여정, 그 끝에서 법원이 어떤 답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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