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만원에 묻힐 뻔한 19세의 비명 '합의금 아닌 배상금' 법정서 증명 가능할까?
3천만원에 묻힐 뻔한 19세의 비명 '합의금 아닌 배상금' 법정서 증명 가능할까?
사촌오빠 성추행
3천만원은 합의금일까 배상금일까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가해자인 사촌오빠 가족이 보낸 3천만원. A씨에게 이 돈은 상처에 대한 최소한의 배상이자, 동시에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됐다.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합의서 한 장 없었지만, 과연 이 돈 때문에 가해자를 법정에 세울 수 없게 되는 걸까. 19세에 겪은 끔찍한 기억을 법적으로 매듭짓고 싶은 한 여성의 싸움이 시작됐다.
새벽의 악몽, 믿었던 오빠의 배신
A씨에게 그날은 친한 사촌들과 함께한 평범한 술자리였다. 당시 19세였던 A씨는 20세 사촌오빠를 포함한 다른 사촌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다. 모두가 잠든 새벽, A씨는 잠결에 섬뜩한 손길을 느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온몸을 짓누르는 공포에 숨을 죽인 채 잠든 척할 수밖에 없었다. 추행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A씨가 소리를 지르면서 끔찍한 상황은 끝이 났다.
사건 직후 A씨는 자신의 가족과 가해자인 사촌오빠의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사촌오빠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술을 먹어서 정신이 몽롱했다, 꿈인 줄 알았다”며 사실상 범행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얼마 뒤, A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가해자 가족이 ‘병원비 하라’며 부모님 계좌로 1천만 원을 보낸 사실을 알게 됐다. 사건의 충격으로 우울증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A씨는 “억울한 마음에 한 달에 200만 원씩 달라”고 요구했고, 가해자의 아버지는 10개월간 총 2천만 원을 A씨 계좌로 더 보냈다.
돈 받았어도 고소 가능…“합의서 없었다면”
A씨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3천만 원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수의 변호사들은 ‘명시적인 합의’가 없었다면 고소할 권리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법무법인 영웅의 박진우 변호사는 “진정한 형사 합의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명확한 의사가 담긴 합의서를 작성하는 것”이라며 “일방적으로 오고 간 돈이 그의 모든 법적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실제로 A씨의 사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에 해당할 수 있다. 법률사무소 신임의 박교현 변호사는 “사촌은 친족에 해당하므로 이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해당하는 중범죄”라고 설명했다.
'합의금'과 '손해배상금'의 차이, 형량을 가른다.
법정에서 돈의 성격은 하늘과 땅 차이의 결과를 낳는다. 만약 재판부가 3천만원을 '형사 합의금'으로 본다면,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처벌불원)를 표시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이는 집행유예의 결정적 근거가 된다. 반면, 이를 범죄로 인한 정신적·물질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금'의 일부로 판단한다면, 이는 가해자의 '피해 회복 노력' 중 하나로만 참작될 뿐 합의와는 무관하다. 실형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 있는 것이다.
A씨의 싸움은 결국 이 돈의 성격을 법정에서 어떻게 증명하느냐에 달려있다.
‘3천만원’의 무게 실형이냐, 집행유예냐
고소가 가능하다고 해서 실형 선고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이 3천만 원의 성격을 어떻게 판단하느냐가 형량을 결정할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법무법인 도모의 김강희 변호사는 “친족이라는 신뢰관계를 악용한 점, 피해자가 정신적 충격으로 치료를 이어가고 있는 사정은 모두 양형 판단에서 핵심적 자료”라며 실형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반면, 법무법인 이엘의 민경철 변호사는 “3천만 원이라는 거액이 오갔고, 그 성격이 피해보상을 위한 금전이라는 점이 객관적 자료로 드러난다면 법원은 이를 ‘피해자에 대한 배상 노력 및 사실상 합의’로 평가할 여지가 충분하다”며 집행유예 가능성을 언급했다.
결국 A씨가 가해자에게 실형을 안기기 위해서는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받은 돈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미의 합의금이 아니라, 극심한 피해에 대한 ‘일부 배상’에 불과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가해자의 사과와 3천만 원의 송금 기록. 법정은 이를 ‘진심 어린 반성’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책임을 면하려는 시도’로 판단할 것인가. A씨의 길고 긴 싸움은 이제 법원의 시간으로 넘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