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차에 받혔는데 되레 소송 당해…'채무부존재' 소송의 함정
후진차에 받혔는데 되레 소송 당해…'채무부존재' 소송의 함정
100% 과실 가해자의 '적반하장' 소송, 피해자 울리는 보험사 꼼수? 법률 전문가들 "반소로 적극 대응해야"

진눈깨비가 내려 미끄러웠던 한 주차장에서 앞에 있던 차가 주차를 위해 갑자기 후진하며 A씨 차량의 앞 범퍼를 들이받았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내가 피해자인데 왜 피고인이 됐죠? 황당한 교통사고 소송의 진실
멀쩡히 주행하던 내 차를 뒤에서 들이받은 가해자가 돌연 “나는 배상 책임이 없다”며 소송을 걸어온다면? 황당하지만 교통사고 현장에서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의 실체다.
최근 한 운전자가 겪은 이 기막힌 사연은 사고 피해자가 어떻게 한순간에 법정 피고인으로 전락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가만히 있었는데 날벼락"…피해자가 피고된 사연
사건은 며칠 전 진눈깨비가 내려 미끄러웠던 한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했다. A씨는 정상적으로 차를 몰고 있었지만, 앞에 있던 차가 주차를 위해 갑자기 후진하며 A씨 차량의 앞 범퍼를 들이받았다. 명백한 상대방의 과실이었다.
이 사고로 A씨는 만성 허리 통증이, 동승했던 아내는 허리디스크와 염좌 진단을 받았다. 이들은 약 한 달간 통원 치료를 받았다.
상식적인 합의를 기대했던 A씨에게 날아온 것은 합의금이 아닌 법원의 소장이었다. 가해자 측이 “대인·대물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며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심지어 가해자는 교통사고 관련 온라인 카페에 A씨를 비방하는 듯한 글까지 게시했다. A씨는 “과도한 치료를 받은 것도 아니고, 과실이 0%인 피해자인데 어째서 내가 소송을 당해야 하는지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나이롱 환자" 낙인찍기? 보험사의 흔한 소송 전략
다수의 법률 전문가들은 이런 소송이 “흔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보험사가 배후에 있는 경우가 많다.
라미 법률사무소 이희범 변호사는 “보험사의 경우 피고가 소액재판에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경미한 사고에 대해 위와 같이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하고는 한다”고 지적했다.
이 소송의 가장 큰 함정은 ‘입증책임의 전환’에 있다. 본래 가해자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지만,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에서는 반대로 피해자가 직접 사고 발생, 피해 사실, 손해액 전부를 법정에서 입증해야 한다.
피해자를 ‘과잉 진료를 받는 나이롱 환자’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깔린 압박 전략인 셈이다. 김경태 변호사는 “정당한 치료를 받았음에도 이를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하고, 더 나아가 인터넷 상에서 비방까지 하는 상대방의 행태는 매우 부당하다”며 A씨의 상황에 공감했다.
"반소"가 유일한 무기…증거로 반격하라
전문가들이 제시한 유일한 해법은 ‘반소(反訴)’ 제기다. 반소란 소송을 당한 피고가 원고를 상대로 같은 소송 절차 안에서 역으로 소송을 거는 제도다. 방어만 할 게 아니라,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적극적으로 청구하며 공격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A씨는 상대 차량의 후진 영상, 사고 현장 사진, 진단서 등 결정적 증거를 모두 확보하고 있었다. 법률사무소 명중 윤형진 변호사는 “블랙박스 영상이 핵심일 것으로 보인다”며 증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법무법인 창세 김정묵 변호사 역시 “상대 차량이 후진하는 영상을 통해 상대방의 과실을 입증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다만 절차적 주의가 필요하다. 법무법인 한별 김전수 변호사는 “법원에 제출할 요약 쟁점정리 서면 및 답변서 요약표가 반소를 주장하는 자료가 되는 것은 아니고, 반소는 별도로 제기하여야 한다”고 명확히 설명했다. 답변서 제출과 별개로, 정식 ‘반소장’을 통해 차량 수리비, 치료비,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까지 청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경태 변호사는 “부당한 소송 제기와 인터넷 비방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도 청구할 수 있다”며 적극적인 권리 구제를 주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