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프로포폴' 팔아 12억 번 의사...경찰 실수로 형량 2년 깎였다
'제2의 프로포폴' 팔아 12억 번 의사...경찰 실수로 형량 2년 깎였다
경찰, 영장 범위 벗어난 진료기록 압수
추징금도 3억 감액

수천 차례 마취제를 불법 투약한 의사가 2심에서 징역 4년으로 감형됐다. /셔터스톡
수십억 원대 마취제를 불법 판매한 의사가 경찰의 위법한 증거 수집 덕에 2심에서 감형받는 이례적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범죄의 실체만큼이나 그것을 밝히는 과정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의사 A씨의 형량을 징역 6년에서 4년으로 낮췄다.
모든 사건의 시작은 2023년 9월, 서울 강남 한복판을 마비시킨 한 대의 람보르기니였다. 주차 시비 끝에 상대방을 흉기로 위협한 운전자 B씨. 그는 현장에서 체포됐지만, 경찰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난폭한 행동만이 아니었다. 약물에 취한 듯 비틀거리는 그의 모습은 또 다른 범죄의 실마리를 품고 있었다.
경찰의 추궁 끝에 B씨가 투약한 약물이 '제2의 프로포폴'로 불리던 전신마취제 에토미데이트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수사의 칼날은 곧장 약물을 공급한 의사 A씨의 병원으로 향했다.
잘못 꿴 첫 단추, '독수독과' 덫에 걸린 경찰
경찰은 B씨의 특수협박 혐의와 관련된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A씨의 병원을 덮쳤다. 하지만 정의를 향한 이 첫걸음은 훗날 A씨에게 되레 일부 면죄부가 되는 역설을 낳았다. 2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3부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 A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압수수색은 영장에 기재된 범죄사실과 관련된 자료만, 정해진 날짜에 한해 확보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B씨 사건과 무관한 기간의 진료기록부까지 통째로 확보하고도 추가 영장을 발부받지 않았다. 법원은 이를 '독이 든 나무에서 열린 과일 역시 독이 있다'는 의미의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독수독과의 원칙)'에 따라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 판단으로 A씨의 범죄 사실 상당 부분이 무죄로 뒤집혔고, 추징금 역시 1심의 12억 5천여만 원에서 9억 8천여만 원으로 3억 가까이 줄었다.
5071번 주사, 무려 12억 벌어
법원의 절차적 정당성 지적과는 별개로, A씨의 범죄는 의료인의 양심을 내던진 탐욕 그 자체였다. A씨는 2019년부터 약 4년간 프로포폴 중독으로 고통받는 환자 등 75명을 상대로 무려 5071회에 걸쳐 에토미데이트를 주사했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이 12억을 훌쩍 넘었다.
당시 에토미데이트는 프로포폴과 유사한 환각 효과를 내면서도 마약류로 지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A씨는 법의 허점을 악용해 중독의 늪에 빠진 이들을 상대로 돈벌이에 나섰고, 심지어 무자격자인 간호조무사에게 주사를 맡기는 대담함까지 보였다.
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뒤늦게 에토미데이트를 마약류로 지정하며 법망을 보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