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없는 40년 장인의 죽음, 법정서 과로사 인정될까
기록 없는 40년 장인의 죽음, 법정서 과로사 인정될까
전문가들 "공단은 기계적 불승인, 법원은 다를 것"

40년 경력 기술자가 자택에서 숨졌지만, 근로계약서 등 근무 기록이 없고 부검 사인마저 '불명'으로 나와 과로사 입증에 난항이 예상된다. / AI 생성 이미지
40년 경력의 베테랑 기술자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족은 과로사를 주장하지만, 회사에는 근로계약서도 출퇴근 기록도 없다. 부검 결과 사인마저 '불명'으로 나오면서 산업재해 인정의 첫 관문부터 험로가 예상된다.
법률 전문가들은 근로복지공단의 초기 승인은 어렵겠지만, 행정소송에서는 다퉈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엇갈린 전망을 내놓았다. 흩어진 증거 조각을 모아 '기록 없는 근무'를 입증하는 것이 관건으로 떠올랐다.
"기록이 없다"…40년 장인의 갑작스러운 죽음
40년 넘게 기계 제조업, 특히 식품기계 제조와 아르곤 용접 분야에서 일해 온 A씨. 그는 지난 2월 3일 자택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부검 결과, 직접적인 사인은 '불명'으로 결론났다. 다만 A씨가 평소 앓고 있던 '고도의 심비대'와 '관상동맥 경화'가 확인됐다.
문제는 A씨의 근무 기록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회사에는 근로계약서도, 개인이 찍는 출퇴근 기록도 존재하지 않았다. 유일한 단서는 문을 열고 닫는 '캡스 출입 기록'과 일부 '휴일급여 내역서'뿐이다.
유족은 A씨의 '구글 타임라인' 기록 등을 토대로 사망 전 12주간 주 평균 근로시간이 약 47.8시간에 달하며, 특히 사망 직전인 12월에는 지방 연속 출장과 주말 없는 강행군을 이어갔다고 주장하며 산업재해 인정을 호소하고 있다.
"공단 승인 확률 매우 낮다"…'52시간'과 '사인 불명'의 벽
법률 전문가들은 근로복지공단의 초기 심사 단계에서는 산재 승인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우선 내놓았다. 고용노동부가 고시한 만성 과로 인정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부검 사인마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해든의 김성돈 변호사는 "냉정하게 근로복지공단의 초기 신청 단계에서 승인받을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고용노동부 과로사 인정 고시 기준은 발병 전 12주간 주 평균 52시간인데 현재 산정된 47.8시간은 이에 미달하며, 부검 사인마저 '불명'으로 나와 공단은 기계적으로 불승인 처분을 내릴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제이디종합법률사무소 전종득 변호사 또한 "부검이 “불명”이면 공단/법원이 업무관련성 판단의 출발점(사망기전)을 보수적으로 보게 되는 경향이 있어 가장 큰 리스크입니다"라며 부검 결과가 불명인 점이 가장 큰 위험 요소임을 지적했다.
"법원에선 뒤집힐 수 있다"…숫자 너머 '업무 강도'를 보라
차가운 공단의 문턱과 달리, 법정에서는 다퉈 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주당 근로시간이라는 '숫자'가 절대적 기준이 아니며, 법원은 업무의 강도와 질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사망 직전 12월의 가혹한 근무 환경이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법무법인 호안의 조선규 변호사는 "사망 직전 시기에 지방 연속 출장과 휴일 없는 근무가 있었다는 점은 단기 부담 증가 또는 만성 과중 업무 주장에 유리한 핵심 사정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김성돈 변호사 또한 행정소송 단계에 대해서는 "근로시간이 52시간 미만이더라도 휴일 없는 연속 근무, 거주지를 떠난 장거리 지방 출장, 아르곤 용접이라는 유해 물질 노출 환경(업무부담 가중요인)이 존재한다면 상당인과관계를 폭넓게 인정하기 때문입니다"라며 법원의 다른 시각을 설명했다.
"입증 책임은 유족 몫"…승패 가를 증거 조각들
결국 과로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은 유족에게 있다. 제이디종합법률사무소 전종득 변호사는 "다만 입증책임은 유족 측에 있습니다"라고 명확히 했다.
승소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파편처럼 흩어진 간접 증거들을 최대한 모아 A씨의 실제 업무 강도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법무법인 연우의 이숭완 변호사는 "특히 12월 출장 기록과 주말 근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교통카드 내역, 숙박 영수증, 문자 등이 있다면 근로시간 입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됩니다"라며 구체적인 증거를 예시했다.
법률사무소 송지의 배성권 변호사 역시 "거래처 출장기록, 동료진술서, 카톡, 작업사진, 차량 운행내역, 급여 흐름, 출장비 지급내역 같은 자료들이 나중에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라고 덧붙이며, 숨어있는 추가 자료 확보가 사건의 향방을 가를 핵심 열쇠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