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수법 모두 비슷한데⋯"성범죄 '습벽' 있다 보기 어렵다" 신상공개 면제한 법원
[단독] 수법 모두 비슷한데⋯"성범죄 '습벽' 있다 보기 어렵다" 신상공개 면제한 법원
거래처 직원 및 직원 등 상대로 성범죄⋯자신의 우월한 지위 이용
강간, 준강간, 강제추행 등⋯재판 중에 대담하게 또 성범죄 저질러
약 2년간 5건의 성범죄 연쇄적으로 저질렀지만 '신상정보 공개' 안 된 이유
![[단독] 수법 모두 비슷한데⋯"성범죄 '습벽' 있다 보기 어렵다" 신상공개 면제한 법원 기사 관련이미지](https://d2ilb6aov9ebgm.cloudfront.net/2020-07-23T19.11.51.219_420.jpg?q=80&s=832x832)
강간, 준강간, 강제추행. 직장인 A씨가 저지른 5건의 성범죄 유형이다. 범행 장소와 수법이 동일했지만, 재판부는 재범의 가능성이 적다며 신상공개를 면제했다. / 셔터스톡
1년 10개월 동안 5건의 성범죄를 연쇄적으로 저지른 직장인 A씨. 한 번의 강간, 한 번의 준강간, 세 번의 강제추행을 저질러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의 얼굴과 이름은 성범죄자알리미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를 재판한 5곳의 재판부가 모두 "성범죄 재범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신상정보 공개를 면제해준 덕이다.
심지어 A씨는 강간을 저지른 혐의로 재판을 받던 도중 다른 피해자에게 준강간을 저질렀다. 재범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재범을 저지른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법원은 그에게 "성범죄 습벽(習癖⋅오랫동안 자꾸 반복하여 몸에 익어버린 행동)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선처를 해줬다. 재범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야만 나올 수 있는 결정이었다.
A씨는 국내에 진출한 일본계 회사의 본사 총무과장이었다. 회사는 지방에 지사가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있었고, 그는 회사에서 중요한 업무를 맡는 소위 '잘 나가는' 직장인이었다.
그의 첫 범행은 지난 2016년 8월. 거래처 직원에게 후임자를 소개받는 날이었다. 최근 거래처에 입사한 일본인 여성 B였다.
업무 때문에 만난 A씨 등 세 명은 저녁 식사 후 노래방에 갔다. A씨의 태도가 바뀐 건 그때였다. 노래를 부르며 시끌벅적한 가운데, A씨가 B씨의 신체 일부를 만지기 시작했다. A씨는 B씨의 전임자가 화장실에 갔을 때는 더 악랄해졌다. 옷 속으로 손을 집어 넣는 등 추행을 멈추지 않았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귀가하려는 B씨를 모텔에 끌고 가 성폭행을 했다. B씨가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A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공소장에 따르면 B씨는 모텔 직원에게 한국어로 "경찰을 불러달라"고 요청했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다. 이 사건 2심 판결문에서 이에 대해 피해자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모텔 직원이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을 수 있다고 썼다.
B씨가 더 강하게 저항하지 않고, 성폭행 직후 회사나 경찰에 알리지 않았던 데엔 이유가 있었다. 어렵게 한국에서 취업한 B씨는 거래처 직원과 문제가 생긴 것을 회사에서 알면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A씨의 회사는 힘있는 오랜 거래처였다.
그로부터 얼마 뒤, B씨는 신고를 결심했다. 업무상 만나게 된 A씨가 또 B씨를 추행한 것이다. 거부하는 B씨를 억지로 끌고 가는 일이 또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B씨를 향해 "(모텔에서) 좋지 않았냐?"라고 묻기도 했다.
A씨의 재판은 지난했다. 성폭행 이후 약 2년이 지나서야 1심 재판이 열렸다. 지난 2018년 5월의 일이었다.
하지만 사건을 담당한 서울동부지법 제12형사부 (정창근 부장판사)는 피해자인 B씨의 진술 신빙성을 문제삼아 B씨의 주장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노래방과 모텔에서 있었던 강제추행과 강간은 '무죄'가 나왔다. 나머지 한 건의 강제추행은 유죄로 인정받았지만, 벌금 500만원에 처했을 뿐이다. A씨와 검사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지난해 1월 열린 2심에서 A씨는 중한 형을 선고받았다. 1심 때와 달리 B씨의 진술 신빙성이 인정되면서다.
재판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제12형사부(재판장 홍동기 부장판사)는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지 못한 것처럼 보이기는 하나, (사건이 발생한 지) 오랜 기간이 지나 당시 상황을 단편적으로 진술한 것"이라고 했다. 덧붙여 "검찰과 1심 법정에서는 한국어에 능통하지 않은 상태에서 통역 없이 진술했다"고 판시했다. 진술 신빙성을 문제삼았던 1심의 재판을 지적한 것이다.
이어 "피고인은 (B씨에 대해) 거래관계상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했다"며 "죄질이 매우 나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지만 신상정보 공개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 이유로 "불특정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라는 점을 들었다.
A씨는 이런 결과에 불복해 이틀 만에 바로 상고했지만 기각 당했다.
그런데 A씨는 또 재판정에 섰다. 대담하게도 재판을 받던 중 다른 성범죄를 저질렀던 것이다. B씨에 대한 성범죄로 벌금 500만원을 선고 받은 2주뒤였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의도적이었을까. 이번에도 범행 시작 장소는 노래방이었다. 회사 사원 두 명과 함께 간 자리였다. 또 다른 피해자 C씨 또한 B씨처럼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할 수 있는 상대였다.
범죄 수법도 동일했다. A씨는 다른 사원이 화장실을 간 틈을 이용해 C씨의 신체를 만지며 강제로 추행했다. 또한, B씨 사건때 처럼 노래방에서 나온 뒤 다른 직원 한 명을 먼저 집으로 보냈다.
그리고 C씨가 숙소로 잡은 호텔에 따라가 성폭행 했다. B씨 사건과 거의 판박이었다.
하지만 C씨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제29형사부(재판장 강성수 부장판사)는 "피고인에게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상대로 한 성범죄 습벽이 있다고 단정짓기 어렵다"며 신상공개를 면제했다.
A씨의 성범죄 전력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랬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피고인이 형사재판을 받던 도중 다시 이 사건 각 범행을 저질렀다"면서도 "뒤늦게나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며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에 3년간 취업 제한 명령도 함께 내렸다.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보인다는 점 등이 양형에 유리하게 참작됐다.
'신상공개 면제'는 A씨가 형이 무겁다며 항소한 2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제8형사부 (재판장 정종관 부장판사) 역시 습벽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신상정보를 등록하는 것 만으로 재범방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징역 1년을 유지하며 장애인복지시설에 취업 제한을 추가했다.
이에 대해 A씨는 상고했다.

